중산층이라는 미명 뒤에 숨은 진실
평범은 사라지고, 환상만 남았다.
우리가 꿈꾸는 중산층의 삶은
이미 상위 10%의 무대 위에 서 있다.
며칠 전 대학 동창과 카페에서 만났다. 아메리카노를 반쯤 남겨둔 채 그가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집값이 너무 올라서...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는 30평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월급 500만 원 정도면 평범한 삶이라고, 중형차 한 대와 예금 1억 원 정도면 중산층이라고 말했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평범하다는 게 대체 뭘까?'
카페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떠오른 의문이었다. 우리가 평범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정말 평범할까.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통계청 자료를 들여다봤다.
어이없는 현실이었다.
친구가 말한 그 '평범한' 조건들을 모두 갖춘 가구는 전체의 12%에 불과했다. 평범이라고 생각한 삶이 사실은 상위 10% 안에 드는 삶이었던 것이다.
평범하지만 뻔하진 않은 얘기를 해보겠다. 우리는 언제부터 환상을 평범이라고 불렀을까.
인스타그램을 켜보라. 또래들의 삶이 펼쳐진다. 예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모습, 해외여행 사진, 신상 옷과 가방들이 타임라인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이는 편집된 일상이다. 누구나 자신의 가장 좋은 순간만 골라서 올리기 마련이니까. 세련된 필터 하나로 평범한 일상이 광고 속 한 장면처럼 변한다. 각자의 인생샷들이 누군가에겐 박탈감을 안긴다.
그 편집된 일상들이 쌓여 우리의 기준을 높였다. 평범의 기준선이 서서히 위로 올라간 것이다.
어느새 우리의 기준이 너무 높아진 건 아닐까.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중산층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마력이 있다. 부자도 가난하지도 않은, 그냥 '적당한' 삶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산층의 삶은 이미 상당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삶이다.
이처럼 높아진 평범의 기준은 '주관적 계층 인식'이라는 흥미로운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도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층을 실제보다 높게 인식한다고. 객관적으로는 중하층에 속하면서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를 '주관적 계층 인식'이라고 한다. 현실적 조건과 상관없이 자신을 어느 계층으로 생각하는가의 문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중하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산층 다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 꿈은 자신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이 간극이 괴로움을 낳는다. 평범하고 싶다는 마음과 평범해질 수 없다는 현실 사이에서 사람들은 좌절한다.
환상을 평범이라 부르는 시대가 되었다. 중산층이라는 이름은 남았지만, 그 내용물은 언제부턴가 부자의 것이 되어버렸다. 괜한 상상을 해본다. 우리가 꿈꾸는 평범한 삶은 정말 평범할까.
혹시 우리는 환상을 평범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범이라 불리는 삶이 가장 비싼 옷이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무엇을 꿈꿔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