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열기가 남아 맴도는 가을향기가 되길 (미상)
대학 시절, 기하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가져온 도형을 꺼내며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 아직도 기억난다.
"여러분, 이 도형은 무엇으로 보이나요?" 내가 보기엔 그냥 원뿔이었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교수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냥 단순한 원뿔이죠?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같은 것이 다르게 보일 거예요. 여러분이 앉은 자리에 따라 보이는 단면이 달라요. 원뿔을 정면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원으로,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점으로 보입니다."
그는 칠판에 원뿔의 3차원 그림을 그리며 덧붙였다.
"이것이 바로 관점의 차이입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어요. 더 중요한 건, 각자가 본 것은 모두 '틀린'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부분적으로는 모두 맞거든요."
그때는 단순한 기하학적 설명으로만 들렸던 그 말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인간관계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로 다가온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연구진은 피험자들에게 두 그룹의 사진을 보여줬다. 한 그룹에는 웃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다른 그룹에는 찡그리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먼저 보여준 후, 모두에게 동일한 중성적인 표정의 사진을 제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웃는 사진을 먼저 본 사람들은 중성 표정을 '약간 행복해 보인다'고 평가했고, 찡그린 사진을 먼저 본 사람들은 같은 표정을 '약간 불만스러워 보인다'고 답했다. 똑같은 얼굴을 보고도 정반대의 해석을 한 것이다.
이는 점화 효과(priming effect)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먼저 접한 정보가 이후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가 아침에 짜증나는 뉴스를 봤다면, 그날은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부정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더 흥미로운 건 뇌과학 연구 결과다. fMRI 촬영을 통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우리가 타인의 감정을 읽을 때 실제로는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는 뇌 영역이 함께 활성화된다. 말 그대로 '내 감정의 렌즈'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투사projection'라고 부른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씌우는 현상이다.
더 무서운 건, 우리가 이런 투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마치 노란 색안경을 끼고 있으면서도 세상이 원래 노랗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나 자신의 렌즈로 타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이 한계를 인지하고 다름을 품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설득의 3요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이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성립된다고 했다.
말하는 사람의 인성
듣는 사람의 기분
말에 담긴 내용의 올바름
흥미롭게도 순서가 중요하다. 내용의 올바름이 마지막에 온다는 점이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의 인성이 의심스럽거나, 듣는 사람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지인과 사소한 일로 다툰 적이 있다. 나는 논리적으로 내 주장이 옳다고 확신했고, 상대방을 설득하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도 상대방은 고개를 젓기만 했다. 나중에 깨달았다. 내가 말하는 순간의 표정과 어조가 상대방을 자극했다는 것을. 내용이 아무리 옳더라도 전달 방식이 틀렸던 것이다.
그날 밤, 그 지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때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런데 그때는 네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어."
문제는 우리가 원뿔을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는 데 있다. 내가 보는 삼각형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이건 원이야"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틀렸다고 단정하게 된다. 그렇게 둘의 의견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 평행선처럼 교점을 찾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심리학자 던닝과 크루거가 발견한 흥미로운 현상을 살펴보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시험 성적이 하위 25%인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상위 62% 정도로 추정했다. 반대로 실제 상위권 학생들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를 던닝-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나는 저 사람을 완전히 파악했어"라고 단정한다. 반면 진짜 통찰력 있는 사람들은 "저 사람을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결국 무지한 사람은 자신이 원뿔의 한쪽 면만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삼각형만 보고 "이게 전부야"라고 확신한다. 지식이 늘수록 오히려 "내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되는 법이다.
원뿔을 넘어서
결국 내가 옳다고만 믿는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보는 삼각형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보는 원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가끔 고개를 들어 "내가 지금 어느 각도에서 보고 있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뿐이다.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상대방도 나름의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때로는 부딪히는 것까지도 감내하는 것이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논쟁이 길어지면 둘 다 틀렸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누군가와 의견이 부딪힐 때마다 생각한다. '저 사람은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 걸까?' 답을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다만 질문만 던져놓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