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는 과일을 통째 주는 법이 없다. 딸기 꼭지를 하나하나 잘라낸 후 먹기 좋은 크기로 다듬는다. 예쁜 접시에 담아 빈티지한 과일 무늬가 그려진 포크와 함께 건네준다. 사과도, 포도도, 체리도 엄마는 꼭 식초물에 뽀득뽀득 씻어 손질한다. 껍데기에서 식초 맛 난다고 제발 식초에 담그지 말라고 떼를 써도 '이래야 농약이 씻겨나간다'며 기어코 시큼한 맛을 입혀버리는 엄마. 지난번 우리 집에 왔을 땐 식초가 없어 엄마는 내가 고이 모셔둔 위스키를 꺼내 청포도에 담가버렸다. 은은한 위스키향이 폴폴 풍겼다.
2.
엄마는 표현은 서툴고 뾰족뾰족 하지만 행동은 분명 정갈한 사람이다. 음식은 항상 예쁜 접시에, 반찬은 하나하나 덜어서, 국은 꼭 따로. 그러면서 본인은 그릇 하나에 다 때려 넣어 어떤 음식이든 기어코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사람. 딸내미 먹을 건 최고로 깔끔하고 예쁘게. 그게 엄마가 나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3.
자취를 하며 과일을 일일이 손질하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수고스러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과는 대충 손에 쥐고 아작아작 베어 먹는 게 편하다. 딸기는 꼭지를 손으로 잡고 빨간 부분만 먹어버린다. 꼭지를 잡을 때 손을 타고 뚝뚝 흐르는 물이 찝찝하지만 칼질 몇 번 해야 하는 귀찮음이 그걸 이겨버린다. 포도는 대충 흐르는 물에 휘휘 담갔다 빼서 똑똑 따먹는다.
4.
문득, 사랑하는 사람 먹일 과일은 정성스레 자르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귀찮다는 생각조차 들지않았다. 행여나 제 때 따지 못하고 남은 이파리 하나 그의 입에 들어갈까 노심초사하며 딸기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렸다. 그에게 줄 과일은 핑크 꽃무늬가 그려진 접시에 도란도란 담아내고, 나는 도마 위 억척스레 자르고 남은 꼬다리들을 입에 욱여넣는다. 물 한 컵도 그는 동그란 비즈가 달린 도자기 컵에, 나는 몇 번을 입댔는지 모를 정수기 밑에 있는 아무 컵에.
5.
그때 나도 비싸고 예쁜 접시에, 색이 곱게 입혀진 도자기 컵에 고상하게 담아 먹을 걸 그랬다. 나도 젓가락 한 짝으로 찌른 딸기 말고, 네게 건네었던 정교하게 잘 깎여진 나무 포크로 먹을 걸 그랬다. 네 기분이 어떤지, 마음이 어떤지 신경 쓸 시간에 내 마음 한번 돌볼걸. "딸기 맛있어?", "사과 예쁘게 잘 잘랐지", "복숭아 깎아줄까?" 그에겐 질문을 그렇게 잘했으면서,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너는 행복하니?'라고 내게 질문 하나 던지지 못했던 내가 있다. 아.. 행복하다고 쉬이 답하지 못했을 나도 있다. 아무 생각없이 쇼파에 널브러져 엄마가 잘라준 딸기를 숭덩숭덩 입에 넣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