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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n 25. 2020

나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만남의 형태

책도 친구도

 어릴 적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을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인지, 가성비 실용적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며 한 시절 보내다 보니 목적이 없는 행동은 의미가 없다는 각박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데 이것이 독서 습관에도 영향을 미쳐 목적이 없는 책 읽기를 주저하던 버릇마저 생겨, 온전히 독서만이 주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지난날이 이제와 생각하니 슬프도록 안타깝다.


지금은 이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며, 책과 그 책을 쓴 사람들을 모독하는 행위인지 알게 되었지만,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혼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누군가는, 무언가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찾아야만 했던 일상을 보내고 있었기에 저런 슬픈 모양의 삶의 그림자가 따라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한창 재테크에 빠져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다. 주식, 부동산, 채권, 경매, 세금 등 각종 재테크 관련 서적만을 찾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쉬어가자는 의미로 다른 종류의 책들을 잠시 잠깐 읽어도 봤지만 그때의 나에겐 소설이나 에세이, 자기 개발서, 인문학 그 어떤 종류의 책들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한창 인문학 관련 강사들이 TV에 나와서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던 시기가 있었다. 유행처럼, 마치 인문학만이 현시대의 유일한 돌파구인 것처럼 채널을 돌릴 때마다 유명 강사들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하며 인생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호통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인문학 책을 읽고, 깊은 사색은 커녕 잠시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내가 그랬다. 신세한탄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때가 있는 거지"라는 말이 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내 눈에, 내 마음에 소중하게 품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살다 보니 만나는 친구에도 여러 부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 때나 만나서 웃고 떠들 수 있는 오래된 벗부터, 술자리가 있어야만 만나지는 술친구도 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부리나케 달려가 조언을 구하고 싶은 의지가 되는 친구, 만나면 배울 것이 있고 존경할만한 친구, 만났다 하면 기어코 내 단점을 찍어내어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나를 돌아볼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친구, 예전에는 가까웠으나 이유 없이 멀어진 친구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예전엔 그다지 가까이 지내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가는 친구도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상황에 각각 어울리는 친구들이 따로 있다.

  

책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기에, 대학시절에, 사회에 막 발을 내디뎠을 때, 퇴직을 앞뒀을 때, 죽음이 임박한 경우, 결혼을 앞뒀거나 아이가 생겼을 때, 이혼을 했을 때, 새로운 취미가 생기거나 정치에 관심이 생겼거나 심적으로 힘든 일이 닥쳤거나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거나, 혹은 연인과 헤어졌거나, 내 능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거나,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거나,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엿보고 싶거나, 생의 무게가 갑자기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 느껴진다거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그때마다 혼자서 해결해 나가기엔 세상살이가 참으로 쉽지 않다. 그때그때 도움이 되는 다양한 책들을 곁에 두고 살아간다면 다양한 친구가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삶이 조금은 덜 힘겹고 조금은 덜 흔들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점점 친구를 만나기 힘들어지는 요즘, 책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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