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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n 25. 2020

살아 있다면 움직여라

봄날 터지기 직전의 꽃 봉오리와 마주하다

 운이 좋게도 저는 대다수의 사회복무요원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 하는 근무지 중 하나인 대학에서 의무복무를 마쳤습니다. 군 복무라고 하기에는 현역 만기 전역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 앞으로 공익시절이라고 쓰겠습니다.

  

 공익시절 어느 봄기운이 만연했던 오후로 기억합니다. 제가 근무했던 대학은 조경을 참 잘해놓았는데, 어딜 지나다녀도 철쭉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특히 철쭉을 많이 볼 수 있는 학교였어요.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점심을 먹고 근무지로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다양한 철쭉이 눈에 들었습니다. 피어있는 철쭉과 피기 직전의 철쭉들.


 그곳에서 보았습니다. 자신의 원대한 목표를 마침내 달성해내어 우아하고 당당하게 한 껏 자신의 꽃잎을 펼치고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당당한 삶의 모습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빨리 자신의 꽃잎을 펼쳐 보이고 싶은 어느 푸른 새싹의 모습을. 둘 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지 않은가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삶을 저 꽃에 비유하면 어떤 상태일까?


 서른이라는 나이에 염치 불고하고 저는 봉오리 상태의 피기 직전의 철쭉에 나를 기어코 대입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야만,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나의 삶에 아직 저 멀리 기대할 만한 선물 꾸러미가 남아 있을 것 같아서, 그래야만 나의 삶을 이끌어줄 작은 불씨라도 살아날 것 같아서, 지금의 나를 만개한 꽃에 대입하기엔 현실의 내가 너무 초라해 보여서 차마 그리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나이 서른, 늦은 나이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자꾸만 초라해 보여서, 잠시 방심하면 이렇게 우울함이라는 괴물이 내 시간과 생각을  좀 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나날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30인데, 앞으로 배워 나가야 할 지식도, 경험도, 삶도 가득가득한데 내일모레 죽을 사람처럼 굴지 않기로 하자고 다짐했어요. 어떤 위치에 서있건 나이가 몇 살이건 항상 피지 않은 꽃봉오리라고 생각하며 움직여 보기로 했습니다. 살아있다면 움직여야 하니까요.


"살아있다면 움직여라"


 대학시절 활동했던 동아리의 모토이자 구호였습니다. 댄스 동아리 활동을 했었습니다. 유치하지만  동아리의 특성과 그냥 잘 어울린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이야 말로 유노윤호의 말처럼 인생의 진리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에서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캐릭터들이 "살아있다면 뭐라도 해야지"라며 중얼거리던 장면이 인상 깊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 보면 뭐라도 해야지만 생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뭐라도 했다는 위안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글 한 줄을 꾸역꾸역 써 내려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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