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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03. 2020

취향의 시작

시작이자 끝

취향이 생긴다는 것은
본격적인 자아 탐색의 시작과도 같다.


우리는 사춘기 시절에 시작되는 정체성과 성장에 대한 고민을 사춘기와 함께 너무 일찍 끝내버리고 만다. 지만 대부분의 성장과 자기 성찰은 사춘기 이후. 성인이 되고 나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그 시기가 좀 빨랐을지 모르지만 산업화 이후 많은 것들이 지연되는 와중에 자아의 탐색 역시도 뒤로 미뤄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하튼 우리는 어린 시절 세상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들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던져대고 다니느라 정작 나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제대로 던지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아이의 행동양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으로 어른 아이, 어른이, 키덜트, 피터팬 증후군 같은 단어들이 사용된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단어들이지만  늦게라도 자기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바라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어디 한 두 가지 라야 대강의 엄두라도 날 텐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아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이건 마치 시계도 없이 아침을 기다리며 새벽길을 걷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즈막 하게나마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려는 노력들은 기특하다. 그런 여러 가지 노력들 가운데에서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취향도 범주가 좀 많아야 말이지 막상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놓고 어떤 것부터 이야기를 꺼낼까 싶다가 이제는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될지 엄두가 안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가지치기를 먼저 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취향이라는 의미를 인식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아마 대부분의 인식이 개안되는 시기인 사춘기 즈음이 아닐까 한다. 그즈음에는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명확해지는 시기이니까. 물론 이유까지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사춘기 시절 인식하게 되는 최초의 취향은 아마도 옷이나 헤어로 대표되는 "스타일"정도가 아닐까? 그전에는 주로 엄마가 사주는 옷을 입고 다녔다면 이제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머리도 액세서리도, 조금은 이르지만 화장도 해보면서 이래저래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이 자신의 취향을 찾기 위한 인생 최초의 노력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청소년들의 화장 문제를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봐줄 여유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와 동시에 형성되는 것이 또래 친구, 즉 우정에 대한 취향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보통 초등학교 중학년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두루두루 함께 어울려서 잘 지낸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파벌과 무리가 생기며 아이들의 세상에도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최초의 생채기가 은은하게 때로는 강력하게 그 흔적을 남긴다.


이것은 내 취향에 맞는 친구와는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나 혹은 우리 무리와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타적인 마음이, 성숙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극단적으로 부딪히며 발생한다.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세상엔 우리와 다른 존재인 너희가 존재하며 우리와 너희는 다르지만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역시도 우정에 대한 취향이 숙성되는 과정 때문이라고 하기엔 그 피해와 여파가 너무나도 크다.  


이렇게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되는 나의 취향 찾기는 시간을 벗 삼아 점점 세련되게 가다듬어져 점차 구체적인 모양을 갖춘다. 처음에는 비율이 맞지 않아 적당하게 반죽되지 못한 밀가루 반죽처럼 물을 더 부었다가, 가루를 더 부었다가를 반복하며 뻑뻑함과 뭉근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할 테지만 점차 찰지고 쫀득한 숙성된 반죽의 형태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어떤 취미생활을 할 때 행복해지는지, 어떤 종류의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여행 방식, 어떤 장소, 어떤 날씨, 어떤 계절, 어느 여행지 등등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려내기 시작한다.


취향이라는 것은 물론 환경에 따라 변화하겠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처음 완성품을 발견해냈을 때의 것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옷이나 우정, 사랑처럼 최초에 인식해낸 어떤 분야가 있을 것이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결국 내 안의 취향의 원형을 발견해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소중히 품고 가끔 소중하고 귀한 간식을 꺼내먹듯 우리 삶 속에서 꺼내보며 행복함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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