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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31. 2020

앵콜과 덤

동서양의 넉넉한 인정  

음악회나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 준비된 마지막 곡까지 모두 부르고 마무리를 하려는 찰나, 앵콜 요청이 쇄도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공연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즉석에서 준비되지 않은  곡을 추가로 공연해주곤 한다.

 

처음부터 곡을 넉넉히 준비했다면 관객들의 아쉬움이 덜했을까? 아무리 많은 곡을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음악의 선율에 흠뻑 빠진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울테다. 축제나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본 사람들은 마지막 곡이 다가올수록 느껴지는 진한 아쉬움을 어찌할 수 없어 발을 동동거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여 관객들의 아쉬움을 알고 있는 음악가들은 그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음악에 흠뻑 빠져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앵콜 요청에 흔쾌히 화답하곤 한다. 이것은 애초에 기획되어있지 않은 덤으로 주어진 기쁨이다.


덤이라는 것은 계획적이지 않은 예상치 못한 추가적인 어떤 즐거움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덤의 문화가 여기저기 가득 들어차 있다.  


수산시장에서 회를 뜨다가도 말만 잘하면 덤으로 멍게 해삼 몇 마리쯤은 슥슥 보태어 담아주기도 하고 단골 식당에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 맞춰가면  인심 좋은 주인이 가끔 메뉴에 없던 계란 프라이를 하나 얹어줄 때도 있다. 부동산 거래를 하다 보면 맘씨 좋은 매도자가 이사나 도배 비용에 보태 쓰라며 이 삼백씩 가격을 빼줄 때도 있고 자동차를 구입할 때에는 썬팅 블랙박스 후방카메라 정도는 딜러가 기본으로 해주는 덤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하다못해 시장에 가서 콩나물 한 봉지를 살 때에도 덤을 주고받는 것이 익숙한 우리는 그야말로 넉넉한 인심의 후예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이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빼줄 것을 미리 생각하여 애초에 높은 가격을 책정해 두었다가 비용을 감해주는 척하며 인심 쓰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태초의 우리의 인심은 그리 각박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는 이런 덤의 문화 때문에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두리뭉실하고 얼렁뚱땅하게 넘어가는 문화가 형성되었다며, 정밀하고 표준화된 계랑의 세계로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세상이 정교해지고 발달해 나갈수록 우리는 알아야 하고 익혀야 할 것들이 늘어만 간다. 알아내고 익히지 못하는 순간 손해를 볼 일이 많아지고 그것은 때때로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기도 한다. 진화와 발달이 맞물려 그곳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이렇게 변해가다 보니, 정확하고 확실히 계산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 작은 틈 사이에는 앵콜이나 덤과 같이 미처 계산하지 못했기에 우연히 딸려오는 넉넉함과 베풂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아름다운 행복이 존재하고 있다. 문득 이런 것들을 발견해 냈을 때 우리는 잠시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서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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