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독립 영화를 본다

재미에서 의미로

by 정 호

20대 때에는 영화를 참 많이도 봤다. 친구의 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화를 보기도 하고, 술에 취해 친구들과 헤어진 뒤, 집에 가는 길에도 시간이 맞으면 취한 상태로 영화관에 들르기도 했다. 개봉하는 영화 중 핫하다는 영화는 꼭 영화관에 가서 봐야지만 직성이 풀렸고,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가 극장에서 막을 내릴 때까지 미처 관람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는 마치 무슨 중요한 할 일을 끝마치지 못한 사람처럼 허탈함을 느끼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 자체가 그냥 좋다는 것과 어떤 사람의 특정한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것은 분명히 어떤 크기의 차이가 존재하는 일이다. 좋아함의 규모가 다르기에 받아들이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의 범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영화 자체가 좋다는 말과 특정한 장르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나는 스스로 영화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던 것 같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영화 자체를 좋아했다기보다는 특정한 장르의 영화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집에서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 집에서 머물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밖으로만 나돌았기 때문에 집에서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주로 봐왔던 영화들이 장르의 특성상 영화관에서 봐야 그 맛이 제대로 사는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든 영화관에서 봐야 더 몰입이 잘되는 것이 사실이고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거나 창작자의 수고로움을 생각한다면 영화관에서 관람하여 최종 관객수를 1명이라도 올려주는 것이 창작자에 대한 예의일 테지만, 그때는 그런 이유들 보다는 오로지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더 재미있는 영화만을 선택했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 영화에 대한 편식이었다.


정신없이 현란하게 터져 나오는 화려한 CG로 범벅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 강렬한 음향효과와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갑툭튀의 향연이 어두운 영화관을 배경 삼아 최고의 심리적 효과를 발휘하는 공포영화들, 범인이 누구일까 범인은 왜 그런 일을 벌인 것일까 주인공의 심리에 몰입하며 끝날 때까지 쫀쫀하게 긴장감을 이어가는 스릴러 영화들, 내가 20대 시절에 보아왔던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었다.


이런 영화들은 일단 재미가 있다.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특별한 사건이 등장하며 캐릭터마다 사연 없는 경우가 없다. 눈과 귀를 잡아끄는 효과들이 적절한 때에 폭발하며 주인공과 사건에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들고 명확하거나 통쾌한 결말로 마무리를 지어 관객들의 마음속에 후련함까지 선물한다. 그야말로 종합 선물세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꿈이다. 블록버스터 영화, 소위 말하는 외부에서 자본을 투자받아 제작되는 대작 영화들은 자본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자본은 끊임없이 더 큰 자본을 향해 돌진하는 본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의 투여를 받은 대작 영화들은 수익 창출이 영화의 최우선적인 목적일 수밖에 없다. 감독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짜고 원하는 배우를 쓰기보다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공식에 따르는 이야기 구성과 어느 정도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천만배우를 주연 조연으로 포진시킬 수밖에 없다. 이것이 블록버스터 영화의 필연적 한계성이다. 재미는 있으나 우리의 삶과는 유리되어 언제나 완벽에 가까운 환상성을 품고 있기 때문에 장르를 불문하고 SF영화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에 비해 독립영화는 우리 삶에 조금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자본의 영향력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탓일까, 물론 흥행이 되면 좋겠지만 독립영화 감독들은 흥행과 돈벌이보다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 같다. 그 이야기들은 너무도 작고 소소해서 영화라기보다는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때가 많다.


그래서 독립영화는 삶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촬영 규모나 등장하는 배우, 투입된 자본의 크기와 같은 요소들을 고려하면 대작 영화에 비해 독립영화는 한없이 초라한 수준이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오래도록 남는 여운이나 고민해 볼 꺼리들을 서로 두고 비교한다면 블록버스터에 비해 독립영화가 결코 초라하다거나 가볍다고 할 수 없다.


20대가 흥미와 재미를 좇는 시절이었다면
30대는 삶과 의미에
조금 더 무게를 싣는 시절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요즘은 독립영화를 더 많이 찾아보게 된다. 재미있고 휘황찬란한 대규모의 영화들보다 조용하고 소소하지만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독립영화들이 더 무게감 있게 다가오고, 때로는 그 잔잔함과 조용함 속에서 재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삶은 특정한 단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며 순환하는 나선형 구조를 띤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독립영화로 취향이 바뀌기도 하지만, 어느 시점에 가서는 다시 또 할리우드 대작에 열광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특정한 단계나 시기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는 것이다. 이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그다음에는 어디에 도달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자꾸 생각하다 보면 작은 성취를 마음껏 기뻐하지도, 지금 마주한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그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느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이 삶을 충만케 한다. 집중은 언제나 계획을 넘어서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