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는 득이 된다.

by 정 호
자본주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안정을 찾으려는 생각이
나를 가장 불안정하게 만든다.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일구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이 말 역시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리겠지만 모든 실물 자산의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며 그로 인해 무섭게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요즘 같은 하이퍼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이 말이 맞다는 쪽에 조금 더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직함과 성실함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그것만으로 가장의 지위를 건사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는지도 모른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우습지 않은 우스갯소리 안에는 성실한 근로소득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어떤 격차에 대한 절망과 분노의 감정이 빼곡하게 박혀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초년생들은 본업에 적응하기도 전에 투잡, 쓰리잡을 알아보고 부가적인 소득을 올리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느라 바빠졌다.


어느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 세대는 자신이 속한 회사에서 과장 부장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보다 재테크에 성공해서 부를 쌓는 것이 훨씬 더 성공적이고 이상적인 삶이며 그렇게 되고자 하는 열망이 훨씬 강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한 조직 안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기 어려운 근무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속화되는 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 임원이 되어봤자 밝은 청사진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 더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재 스스로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10년 뒤 20년 뒤, 심지어 50년 뒤까지 시간을 빠르게 감아보아도 경제적 자유에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결과를 마주하게 되는 세대에게 열심히 노력해서 피라미드의 저 꼭대기에 올라가 보라는 말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회피와 쟁취가 바로 그것이다.

욜로 힐링 플렉스는 전형적인 회피성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때때로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안정을 주고 실효성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회피성 방어기제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부처님을 비롯한 극소수의 현인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쟁취하는 것뿐이다.


어제와 같은 삶을 살면서
내일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상이다 - 아인슈타인-


무언가를 쟁취하고자 한다는 것은 내가 아직 그것을 갖지 못했다는 뜻이며 갖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의 루틴에서 벗어난 사고와 행동양식으로 나를 잡아끌어다 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때때로 오싹하기까지 하다. 물론 이것은 성공 확률이 낮은 모험에 베팅하는 무모한 도전처럼 보여 염려와 걱정의 차원에서 던지는, 안정으로의 회귀를 위한 사회적 바리케이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확률의 싸움이고 누군가는 그 확률 싸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성취를 거머쥔다.


확률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리스크를 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존에 획득한 안정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삼성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낯선 이국땅으로 이민을 결정하는 사람, 공무원을 그만두고 유튜버나 전업투자자로 직업을 바꾸는 사람, 자리를 잡아 잘 되어가는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꽤 큰 규모의 새로운 대출을 일으키는 사람, 불행한 가정생활을 마지못해 이어가다가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위해 휴직을 하고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 등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량의 리스크를 감당해야만 한다.


리스크를 짊어졌을 때
과실을 획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어린 시절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이가 어릴수록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엔 리스크가 큰 행위를 리스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것으로 금세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곤 했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답례의 의미로 자신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한 가지쯤 말하지 않고서는 관계를 유지하기 껄끄러워진다는 것을 피부로 직감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경제를 주무르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처럼 대인관계를 주관하는 일종의 법칙과도 같았다.


어린 시절엔 이런 리스키 한 행위가 추후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생명을 깎아먹는 필살기를 남발하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이런 행위를, 어떤 두려움도 없이 순수하게 관계 형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이러한 방식의 위험성을 체험하고 점차 리스크의 범위를 능숙하게 조절해 낼 줄 알게 되거나 아예 리스크를 지지 않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담백한 관계, 쿨한 관계, 심플한 관계, 모두 아름답고 트렌디한 말인 것도 같다. 실제로 이러한 관계를 맺게 되면 편하기도 하고 깔끔해서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은 관계, 성실하고 충실한 관계, 서로에게 보탬이 되고 자극이 되어주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마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사람에게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경계심이라는 것은 모르면 모를수록 견고해지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 알아갈 때 조금씩 부숴지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깊이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히스토리를 듣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다. 리스크를 짊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는 언제나 그 이상의 결과물을 나에게 가져다준다. 리스크를 짊어질 때에만 보다 큰 무언가를 획득할 수 있으며 리스크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짊어질 것. 투자의 세계에서도 인간관계의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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