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은 왜 매번 다른 속도로 째깍 일까
어린 시절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는지도 정확히 몰랐으면서 그저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렇게 십 대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 이후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학시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10대와 20대의 시간을 돌이켜보며 색에 비유를 해본다면 10대는 검은색, 20대는 흰색 정도가 되려나? 어두워서 빨리 지나가길 바랬고 너무도 밝아서 그저 붙잡아두고만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될 때는 마치 인생이 모두 끝난 것처럼 비통한 마음이 들었다. 고작 숫자 하나 늘었을 뿐인데 20대와 30대라는 말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고 보았던 것이었을까. 실체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앞으로 다가올 서른 하나, 서른둘의 시간이 도통 기다려지지도, 기대가 되지도 않았다. 심지어 아직 마주하려면 십 년, 이십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할 서른아홉, 마흔아홉이 아득한 재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불과 오 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은 서른다섯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제는 시간의 흐름에 조금 무디어졌다. 지난 5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반복되는 일상에 스며들며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별다른 일이 아니라고 느껴져서였을까? 어린 시절 품고 있던 어떤 커다란 희망이나 불안들이 사라져서 더 이상 극적인 상태를 꿈꿀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저 세월이라는 것은 이처럼 감각을 흐릿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닌 야누스적인 존재였기 때문일까.
시간의 흐름을 혼자서는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늘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 걸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규칙성의 세계에 발을 들였기 때문인 걸까.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은 내일이 될 것 같은 정갈하게 정돈된 시간을 살아가며 시간의 변화를 인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한 욕심이었을까.
그런 와중에 문득 세월의 흐름을 체감할 때가 있다. 그것은 주로 주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의 등이 굽어 보인다거나, 자식이 벌써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거나, 리마인드 웨딩을 생각하게 된다거나, 친구들의 직급이 더 이상 대리 사원이 아니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며칠 전 2020년도 수능시험이 치러졌다. 코로나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였지만 국가 최대 인원이 응시하는 거대 시험인 수능은 어떻게든 치러져야 했다. 수능으로 뉴스가 도배되던 날 아침, 문득 수능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지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 금세 일상의 시간으로 시선을 돌린다.
외부의 변화나 이벤트가 없다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까. 가령 무인도나 감옥에 갇혀 시간과 격리된 채 살아가게 된다면, 환경의 변화를 감지할만한 외부의 존재가 내 옆에 없다면, 나는 늘 시간을 박탈당하기 직전의 나이인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게 될까? 그것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영원히 너는 스물다섯이야 내게
빅뱅 - BAE BAE
빅뱅의 노래, 베베의 가사처럼 시간의 멈춤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로맨틱한 순간도 물론 존재할 수 있다. 스물다섯의 나와 서른다섯의 나는 어떤 시간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일까. 그 둘 사이엔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