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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n 25. 2020

지켜준다는 말

배려와 자신감, 책임과 용기가 필요한 행위

 살다 보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켜줄게 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여기서 사랑하는 대상은 부모이거나 자식일 수도, 혹은 애인이거나 친구일 수도 있겠다. 지켜준다는 말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길래 우리는 지켜준다는 말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인 것 마냥 정성과 성의를 다해, 나의 온 마음을 다해 조심히 전해주려 하는 것일까?


무엇으로부터 지켜준다는 것일까


 타인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준다는 뜻일까? 유치원 아이들이라면 이 정도의 생각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건네는 지켜준다는 말이 단지 저 하나의 단순한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을 줄여 지못미~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이 말은 남을 놀리거나 혹은 안쓰러운 타인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드러내려는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었지만 이것은 지켜준다는 본래의 뜻에 어울리지 않는 언어 사용이다. 우리는 지켜준다는 단어의 본래 의미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켜준다는 것은 분명 무엇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의미임에 틀림없다. 보호해 준다는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넘치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다. 때로는 희생이 필요할지도 모르고 깊은 배려심이 필요한 섬세한 감성이 요구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란 말인가? 조금 구체적인 예를 들어 살펴보자.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해 내일부터 일 그만둬!라는 말을 하며 지켜준다는 단어를 사용할지도 모른다. 이때의 지켜준다는 말은 얼마나 큰 평안과 아늑함을 주는 언어일까? 남자인 나조차도 만약 저런 말을 듣는다면 지켜준다는 의미에 대해서 곱씹고 또 곱씹게 될 것만 같다. 또 다른 이는 노화의 두려움으로부터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 피부과 예약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의 지켜줌 또한 따듯하고 행복하며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할 것 같다. 애인, 군대, 수험생활, 이별, 술자리, 부모님의 진심 어린 걱정, 언젠가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등 평생 동안 수많은 내적 외적 다툼 속에서도 결코 끊을 수 없었던 담배를 자신의 자녀를 위해 끊었을 때, 이 행위에 지켜준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서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척해준다거나 다툼이 생겼을 때 일부러 져주어 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줄 때 사용하는 지켜준다는 말은 고귀하다는 느낌마저 받게 한다. 


 조금 철학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궁극적으로 지켜준다는 것은 너의 존재, 너 자체를 잃지 않게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바라볼게 라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통용되어야 마땅한 윤리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그것을 지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연애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켜준다는 말은 많은 무게를 담고 있고 그만큼 지켜내기 어렵지만 마침내 그 말의 본뜻에 도달하는 행동을 해 냈을 때, 그때 우리는 행복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사랑을, 미소를, 행복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에 우리는 꽤나 무거운 부담과 중압감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행위를 스스로 해냄으로서 우리는 스스로 많은 것들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니 무엇을 할 것인가. 반드시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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