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하여

그리움과 애잔함 그 어디 즈음에 존재하는 서글픔

by 정 호

'그립다'와 '애잔하다'는 단어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보고 싶거나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가냘프고 약하여 애처롭고 애틋하다.


지나가 버린 것들이 꼭 그렇다. 그립고 애잔하며 서글프다. 무엇이 그리도 그립고 애잔할까. 왜 지나가 버린 것들은 그토록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고 애틋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언제까지고 지나가 버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힘들 것 같아 글을 써보려 한다.


우리는 언제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하여 하던 일조차 멈춰가며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주로 철이 지나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들을 마주할 때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겨울의 초입 즈음이었을까. 제주도의 휴양지로 유명한 어느 해수욕장을 거닐고 있었다. 여름휴가철이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해수욕장 한편에 남아 홀로 펄럭이고 있는 플랑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실밥이 터져 하얀색 실이 마치 낫또를 한 입 떠먹으려 숟가락을 들어 올렸을 때 보이던 실거미처럼 보일 듯 말 듯 펄럭이고 있었다. 초겨울의 바닷바람 때문이었을까. 플랑은 잃어버린 자신의 존재감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지나치게 힘차게 펄럭였다. 그럴수록 더욱 처연하고 고독해 보이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햇살 한 줌 만으로도 설렘을 느끼게 하는 찬란한 계절 봄. 그 아름다운 봄의 절정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아주 잠시 잠깐 보여주고 스러져 버리는 봄의 꽃들을 볼 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유행이 지나 더는 입지 않을 것만 같은, 내가 구태여 한 번 꺼내서 입어주지 않으면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옷장 속의 옛 옷을 바라볼 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사진 속 누군가의 모습 따위가 평온했던 내 마음에 미처 대비할 틈도 주지 않고 갑작스럽게도 돌을 던지곤 한다.

갑자기 돌을 맞은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거리는 수 밖엔 별다른 도리가 없다. 한참을 휘청거린 다음에서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해보지만 잔잔한 일상으로 되돌아오기엔 한참 시간이 걸리곤 한다. 겨우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서야 차분하게 생각해볼 여유가 생긴다.


저렇게 철이 지나도 한 참 지나서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한 때 불꽃과도 같은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음을, 이제는 그 시절에서 멀어져 버렸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나에게, 마치 우는 아이가 엄마 품에서 억지로 떼내어져 더욱 서럽게 우는 것처럼, 서럽고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체념의 정서를 느끼기에 서글퍼지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시 한번 그런 찬란한 순간이 내 인생에 남아있을 것이라며, 언젠간 다시 한번 인생 2막이 펼쳐지길 바라는 욕망이 꿈틀대는 것 또한 멈출 수가 없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가는 것은 가고 오는 것은 온다는 누군가의 초월적인 언어는 참으로 멀게만 느껴진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시련에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이라는 최백호의 노래 가사처럼 시련조차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시절. 그 시절로 다시 한번 돌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해서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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