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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Dec 23. 2020

섬세함을 빼앗기다  

간극 본능

우주에 비하면
우리는 티끌과도 같은 존재


무한에 가까운 압도적인 시간과 공간의 규모 앞에 인간이란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이 한마디의 말은, 다소 철학적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항상 겸손을 잃지 말라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책 팩트풀니스는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인간의 10가지 본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중 "간극 본능"은 요즘 말로 치면 무엇 무엇 미만 잡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주로 사용되는 ~~ 미만 잡이라는 표현은, 해당되는 무엇 무엇은 최고의 가치를 지녔으며 그 이하의 것들은 잡스러운 것들이므로 별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서울 미만 잡, 손흥민 미만 잡, 송강호 미만 잡, 등의 표현을 예로 들어 보자면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는 대상(서울, 손흥민, 송강호)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포지션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순위를 매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거나 혹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과도한 값을 매겨 세상을 정확하고 촘촘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고 아주 느슨하고 대략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


수학자들은 세상일은 재미있게도 수학과 연관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그들의 모든 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통계라는 학문이 어느 정도 현실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적용되는 것을 목격할 때면 수학과 현실의 연관성에 놀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있다.


간극 본능은 극단 값에 몰두하게 되어 세밀하게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데 이는 극단값을 제외하고 의미를 찾아야 하는 수학적 세계관,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통계적 세계관에 정확하게 반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는 극단적인 예외 사례를 제거하고, 보다 넓은 범위에 속하는 보편적인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고 오히려 예외사례가 일반적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인지처리 방식이라는 의미이다.

 

간극 본능은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거나, 사람들의 이견 없이 압도적으로 성공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오만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간극 본능에 휩싸여 있는, 부와 권력의 최상층에 위치하는 사람들은 월 100만 원을 버는 사람과 월 200만 원을 버는 사람, 월 300만 원을 버는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미세한 차이를 섬세하게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땅을 내려다보면 1층 건물이나 10층 건물이 비슷해 보이듯, 너무도 압도적인 부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기에 나 정도 버는 사람 미만 이라는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백만 원을 버는 사람이나 이백만 원을 버는 사람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자신과 나머지 사람으로 소득격차를 간단하게 분류해 버리기 때문에, 강한 놈과 약한 놈, 부자와 빈자로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간극 본능은 꼭 부유한 사람, 성공한 사람들만 빠지게 되는 늪이 아니다. 세상을 촘촘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간극 본능에 우리도 이미 지배당하고 있다. SNS가 바로 그것이다.


SNS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자괴감, 박탈감, 현실 부정, 분노 등의 감정을 느끼는 빈도와 강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상위 1퍼센트 극단값에 해당하는 삶을 바라보며 그것이 마치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인 것처럼 느끼게 되고, 나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감정에 빠진다는 것은, 인간은 시각적인 자극에 속아 스스로 감정 조절을 유능하게 해내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과 같다.  


나만 없어 고양이라는 노래가 한동안 유행하면서 연예인이나 유튜버를 비롯한 스트리머들이 유행처럼 그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다. 과연 정말 나만 고양이가 없는 것일까? SNS의 세상은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며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갈망하게 만든다.


세상은 우리의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미세하고 작은 수많은 존재들과 그것들 간의 연관성을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노력해도 결코 다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 그런데 이토록 단순하게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드는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힘들 것이고,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나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다. 스스로 이런 인식의 오류를 자각하여 깨닫기는 어렵다. 선각자들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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