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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Apr 06. 2022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라떼 담론

라떼는 말이야~


지겹다. 라떼를 시전하는 꼰대스러움이 지겹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라떼로 시작하는 문장과 사람을 혐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겹고 피로하다.  


꼰대가 되기 싫은 기성세대와 피해 의식에 쩔어있는 새로운 세대 간의 갈등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유독 2020년대에는 그 강도가 더욱 심해 보인다. 세대 갈등을 포함하여 지역 갈등, 종교 갈등, 남녀 갈등, 정파 갈등, 온갖 종류의 갈등과 불협화음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꼰때의 낙인을 피해 가기 위해 극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아끼는 모든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대 간 불화를 넘어 개인 간에 있어서도 완벽한 단절이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소통이란 무엇일까. 소통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을 테지만 소통이라는 것은 결국 나와 너의 삶이 교류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피어난 따듯함의 보호 속에서 냉철한 논리와 이성을 꽃피울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의 바탕이 된다는 소리다. 한데 나의 경험, 나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지 못하게 미리 서둘러 날카로운 차단막을 펼쳐두고 "어디 한번 걸려만 보라지"하는 마음으로 노려보고 있는 상대방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감히 꺼내 놓을 수 있을까.


세대 간 대통합이나 기존 지식과 질서의 전수 같은 거창함은 잘 모르겠다. 다만 너도 나도 벙어리가 되어가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꼰때의 특징과 위험성 그리고 맥락적 상황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꼰대스러움은 분명 유해하다. 꽉 막혀있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으며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로남불을 시전하며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이외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심지어 그 가치들조차 순간순간 뒤바뀌어버려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고 조직의 신뢰를 뿌리부터 썩어가게 만드는 그런 꼰대스러움은 분명 유해하며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만 그 꼰대스러움을 판단하는 잣대가 특정 언어적 표현에 너무 쉽게 링크되어 "라떼는"이라는 표현이 마치 모든 꼰대스러움의 대표 격이 된 것 마냥 이미지화되어 사용되는 현 세태가 너무도 무섭다. 이는 마녀사냥과 다를 바가 없다. 조금만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 해도 "으 진지충 극혐"이라는 표현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의 입을 사전에 틀어막아버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소통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다.


"라떼는"이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는 꼰대의 특징인 "소통의 부재"를 몸소 실현하며 자신이 꼰대임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니 어찌 우습지 않을 수 있을까.


적당히 하자.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거를 것은 거르고 받아들일만한 것은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진짜 소통이자 어른의 자세다. 꼰때론을 외치는 사람들 가운데 진짜 어른스러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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