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또 어느 골목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뒤늦게서야 알아챈다.
거의 폐허에 가까운 슬럼화된 도시 한편에 위치한 골목길,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을 것만 같은 골목을 걷다가 거의 무너져 내려앉아 사람이 살지 않을 것만 같은 집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흠칫 놀란다. 거미줄이 쳐져있고 부분적으로 부서져 내린 담장을 넘어 때때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함과 이토록 우렁찬 소리가 어울리지 않는 듯하여 깜짝 놀라기도한다.
예전에 한 번 동네 개에게 물렸던 기억이 있어 침을 뱉어대며 포효하는 대형견의 견상을 마주할 때면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건만 뛰어서 도망가자니 왠지 창피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서 걷던 속도의 두 배쯤 되는 종종걸음으로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동네의 수호신이라도 자처하는 듯한 그 대형견과 거리를 둔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한 두 블록만 뒤쪽으로 돌아 들어오면 이처럼 낯설고 생경한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 신기하다. 슬럼화된 지역을 살리려는 노력 가운데 가장 쉽게 사용되는 방법이 벽화가 아닐까. 이곳 역시 벽화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지만 그 벽화를 보기 위해 관광객은커녕 옆동네의 주민들조차 발길을 옮기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곳이 벽화마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 나와 이곳을 벽화마을로 선정한 공무원 그리고 벽화를 칠한 사람 정도일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벽에 칠해진 그림을 하나씩 감상해 나가던 찰나, 벽에 적힌 희망과 사랑이라는 두 단어가 왜인지 모르게 한없이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희망이 없는 곳일수록 희망을 부르짖고 사랑이 없는 곳일수록 사랑을 노래하는 것일까.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처럼 속이 비었어도, 겉이라도 그럴싸해 보였더라면 이토록 슬프고 허전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무너져가는 동네 벽화들 사이에 힘없이 적혀있는 희망과 사랑이라는 단어는 꺼져가는 생명이 마지막 숨결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한없이 작고, 외로워 보여 오랫동안 바라보질 못하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이 겉으론 저래 보여도 속은 여린 사람이라는 말, 완벽해 보이던 부부가 사실은 쇼윈도 부부였다는 말, 외제차를 타고 고급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면서 달방 월세를 살더라는 말,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던 종교인이 잘못된 사랑으로 희망을 짓밟더라는 말, 이런 말들을 마주할 때면 세상은 도대체 얼만큼의 거짓을 품고 있는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희망이 없는 곳일수록, 사랑이 없는 곳일수록 희망과 사랑이 더욱 간절하기에 더 크고 우렁차게 부르짖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철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역설을 하나하나 마주해 나가는 과정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