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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Feb 12. 2021

인생에 있어 가장 필요하지 않은 것

나이에 사로잡히지 말기

나잇값 좀 해라. 나잇값도 못하고...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기준인 나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스스로 선택을 유예하거나 외면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항로를 결정할 때가 너무나도 다. 한데 이 나잇값이라는 것은 기준이 모호하고 상대적인 측면이 강해 사실 실존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실존하는 장벽 이상으로 뛰어넘어서기 힘들어한다.


나이와 나잇값은 상대적이다.


사십은 불혹이요 오십은 지천명이라는 공자님의 말씀 탓인지 우리는 중장년층이 되면 불혹과 지천명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몸과 마음가짐을 정돈하며 살아야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사십이고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십의 나이라는데 정말 그렇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십 대와 오십 대가 있다면 그들은 가히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이어 세계 5대 성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예를 들어 보자. 사십은 대한민국에서 중장년층에 해당한다. 그들을 일반적인 직장인의 개념에서 바라본다면 가장 중요하고 큼직한 일을 많이 맡아 수행하고  조직 안에서 위와 아래를 아울러야 하는 중추적인 역할, 조직의 허리이자 핵심 멤버로서의 의무를 수행해 나가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역할 하나가 인간의 자아를 구성하는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들은 때때로 가족의 막내로서 병든 노부모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철없는 장난을 걸기도 하고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는 날에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직함과 명함과는 상관없이 깨복쟁이 십 대로 되돌아가 그 나이의 성인이 보이리라곤 생각되지 않는 기행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사. 오십 대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십 대부터 죽기 직전의 사람까지, 아직 생을 다하지 않은 인간이라면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다. 갓 스무 살의 청년도 열아홉의 고등학생 앞에서는 까마득한 커리어를 지닌 선배가 될 수 있고 은퇴를 앞둔 육십 대의 시니어들도 구십 세 노인 앞에선 이제 갓 은퇴한 인생 2막 초년생에 불과하다.


이렇게 상대적인 개념인 나잇값 때문에 놓치게 되는 수많은 즐거움과 기회들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배움에는 때가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만 한다. 무언가를 배워 나가는 사람의 정신은 늙지 않는다. 비단 늙지 않고 젊은 영혼을 유지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배움과 학습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개인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으로 나이라는 무난한 방패를 선택하곤 한다.  


육십이 되어 춤을 배우는 것, 서른 살에 전공과 상관없는 새로운 길에 뛰어들어 보는 것, 사오십대가 되어서도 애니메이션을 보고 아이돌의 음악을 청취하는 것, 백발노인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 것.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는 생각을 깨부수는 이런 모든 행위들에 찬성하며 찬사를 보낸다.


반대로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라는 것 역시 없다고 생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5세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제갈공명은 26세에 유비의 책사가 되었으며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2010년 27세의 나이로 타임지에서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히기도 했다.


비단 이런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얼마든지 나이와 상관없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다른 이유가 아닌, 단지 나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나의 행복을 유예하는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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