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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n 25. 2020

중간만 하자는 말의 치사함

콘셉트의 부재, 개성의 부재, 신념의 부재

살면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  top 10 안에 포함되어 있을 것만 같은 바로 이 말.


중간만 하자~~~


 이것은 우리의 안온한 삶을 지켜주고 유지시켜줄 보호막이자 울타리이며 나를 걱정하는 사람의 진심 어린 조언입니다. 혹은 누군가의 넘치는 역량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평범한 다수의 강력한 외침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 중간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인생은 결국 선택의 집합체이며 선택이라는 말 자체에 중간이라는 가능성은 이미 존재하지 않아요. 이렇게 무한히 연속되는 선택의 결과가 현재 나의 인생인데 대체 중간이 발 디딜 틈이 어디에 있다는 말일까요.

 

 한데 우리는 왜 그것이 어렵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중간중간 기어코 중간을 끝없이 외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현실의 삶에서 나의 색깔을 드러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귀찮아지는 일이기 때문 아닐까요?


 이 "아닐까"라는 표현조차 나와 다른 생각이 두렵고 적을 만들고 싶지 않으며 공격받고 싶지 않다는 방어적인 생각이 내재된 표현은 아닐까요?


 다시 돌아와서, 무엇이 그리도 위험하고 귀찮아지는지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습니다. 회식 메뉴를 정하는 것만 생각해봐도 나의 선택을 포기하고 타인에게 선택의 권리를 이양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귀찮음을 해결해주는지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고로 현실을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써 중간만큼 편하고 안락한 선택지는 없지요.

  

 하지만 이 중간이라는 선택지가 때로는 비겁한 선택일 수 있으며 결국 아무도 내 옆에 남아있지 않겠구나 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할 때가 있습니다. 살다 보니 그렇더라고요.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고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누구의 사랑도 얻을 수 없게 되는 경험. 모두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라고 했던가요.


 이것이 중도가 짊어져야 될 숙명이라면 조금 과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으나 중도만큼 듣기엔 부드럽고 평온해 보이지만 매력 없고 몰개성적인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내적 성찰이 없기에 중도자로 남게 된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중도자는 결국 콘셉트도, 개성도, 신념도 잃어버리게 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범인들이 선택하는 중도자라는 포지션은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위대한 한 발을 내딛는 영광을 맛보는 기쁨을 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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