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사레

언젠가 소설이 될 한 장면

by 정 호

본 내용은 픽션입니다.


시골에 혼자 사는 할머니 댁에 그녀의 딸과, 그 딸의 아들은 가끔 시간을 내서 얼굴을 비추곤 한다. 복작거렸던 지난 세월과 다르게 덩그러니 남겨진 주택에 혼자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딸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젊은 시절 친정에서 이것저것 가져오기 바빴던 것과 달리 이제는 작은 것이라도 가져다주려고 애를 쓰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고마움보다 자신의 노쇠함을 먼저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달리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때 느끼게 되는 미안함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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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따 느네 엄마는 평생 말을 안듣는다잉 그게 제일로 큰 흠이여, 성질은 급해갖고 뭔 말을 혀도 지 할말만 하고


딸: 아따 방이 환해졌네 형광등은 누가 갈아줬어?


서로 듣지 않고 각자 자신의 할말만 하는 모습은 현대인의 소통불능을 잘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아 익숙하면서도, 그녀들의 대화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특수 관계에 힘입어 얼마간의 애정이 깃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딸: 마당에서 상추 좀 따갈께 엄마~


할매: 여그 다 따놨다. 이것 싸 갖고 갖고 가~ 모기도 많은디 괜히 힘 빼지 말고, 쩌~그 정지(부엌의 경상도 사투리) 앞에 항아리 놔둔 것 있다. 그것이나 하나 가져가라


희한하다. 말투나 억양은 틀림없는 전라도 사투리인데 사용하는 단어들을 보면 여기가 경상도인지 함경도인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6.25 때 북에서 넘어와 전라도에 터를 잡은 할머니는 어찌하여 경상도 어휘를 익히게 된 것일까. 도대체 할머니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딸: 항아리랑 독아지랑 독이랑 다른 말인가


할매: 다 같은 말이여. 야! 날씨가 선선하니 좋다. 일로 마당으로 나와 봐라잉


딸: 엄마 이 집 고기가 맛있어. 김치 넣고 볶아도 먹고 찌개도 끓여먹고 해. 나는 이 집 고기만 사 먹어.


할매: 볶아먹든 지져먹든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할랑게 신경 쓰지 말고 너나 잘 챙겨 먹어라잉


딸: 꽃이 다 떨어졌네 엄마


할매: 새가 다 뜯어먹어갖고 그라냐. 그나저나 아야, 집이 궁궐이 되브럿지? 할매가 재산이 없어서 동사무소에서 와가지고 지붕이랑 주방이랑 샷시를 싹 다 고쳐주고 갔당게 궁궐이 되브렀어야?


손자: 그러게요. 집이 새 집이 됐네.


할매: 아 근디 저 마당 앞에 물 흘러 나가는 곳이 꽉 막혀브렀어. 사람 불러서 고쳐야 안 쓰겄냐. 느그 외삼촌이 알아서 한다고 했응게 내비둬라이


손자: 수도관이 막힌 모양인데요? 지붕공사 하면서 나온 찌끄러기가 수도관을 막았나? 어디 보자... 에헤이 집이 오래돼서 수도관 위를 덮고 있는 돌이 통째로 움푹 깨져서 수도관이 밖으로 나와버렸네. 이것도 동사무소에 얘기하면 손봐주지 않을까요 할머니?


세월은 사람과 사물 모두에게 흔적을 남긴다.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대문 앞 수도관을 덮고 있던 돌바닥이 스스로 깨져 지하의 수도관이 밖으로 드러날 정도의 시간 앞에 그 수도관과 수도관을 어설프게 덮고 있는 돌무더기보다 더 자잘하게 바스라지고 있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던 세 사람의 마음이었을테다.


할매: 내가 염치가 없어서 그려. 지붕도 고쳐주고 샷시도 갈아주고 했는디 어떻게 그것까지 또 해달라고 한다냐. 그냥 내 돈 쪼께 주고 삼촌이 사람 불러다가 고친다고 했응게 내비둬라


손자: 그래요. 삼촌이 알아서 하겠지 뭐


딸: 엄마~작은방에다가 문 하나 새로 뚫지. 화장실 왔다 갔다 하기 편하게. 날 추울 때 머더러 밖으로 왔다 갔다 한대 노인네가 위험하게 여기다가 문 하나 만들믄 화장실 다니기 편하겠고만


할매: 놔둬~! 야 그냥 놔둬라~ 내가 알아서 할랑게 신경 쓰지 말어~

할매: 할매는 공짜로 얻어먹는 걸 싫어 혀~그래서 공사하러 엊그저께 2명이 왔는디? 그 사람들한테도 꼬옥~ 점심 먹으라고 삼만 원씩 챙겨줬다잉? 그랬더니 아 글씨 공사를 잘해놨어, 이것 봐라 어디 안 궁궐 가트냐?


손자: 좋아졌네. 이제 곧 추워질 텐데 잘됐네요 할머니, 겨울 되면 보일러랑 따듯하게 틀고 계세요.


할매: 안 그래도 기름을 몽땅 받아다놨다잉. 쪼끔만 틀어도 후끈후끈 혀. 춥냐? 방금 보일러 틀어놨는디.


딸: 아 됐어 엄마 곧 가야 돼. 야도 바쁘대 나 이거 호박 좀 가져간다?


할매: 그려 다~ 가져가라. 나는 이도 안 좋고 소화가 잘 안되야서 인자 세끼 식사를 다 못혀. 그래서 호박이랑 깻잎이랑 고추랑 이런 것들 다 못 먹고 남아돈다. 다 가져가라, 아야 너도 좀 싸가라 여그 널렸응게


손자: 아니요 저 집에서 밥도 잘 안 해 먹고 저번에 가져간 것도 많이 남아 있어요.


할매: 그냐? 그럼 된장 좀 가져가서 먹을라냐? 마트에서 파는 된장은 맛이 없어. 여그 좋은 된장이 있는디 옆집 할매가 담가 준거여. 옛날에는 같이 담아서 나눠 먹고 했는디 다 죽어버렸어. 글고 인자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메주도 못 만들고 한 게 나는 줄 것이 없는디 자꾸 뭘 줘싼네, 이것 갖다 먹어라


손자: 아니요 할머니. 저번에 주신 된장도 그대로 있어요.


할매: 잉? 그대로 있어? 아따 너네는 뭘 먹고 산다냐

그럼 젓갈 좀 가쳐갈텨? 할매는 소화가 안되믄 젓갈이랑 밥 먹는다잉. 그럼 소화가 잘되야. 곰소에서 온 맛난 젓갈 있는디 좀 갖다 먹어라.


손자: 아니요 됐어요 할머니. 할머니 많이 드셔


할매: 아따 너는 뭐슬 다 안 먹는다고만 해싼냐. 그럼 너네가 갖다 먹어라 젓갈 여기 겁~난게


딸: 엄마 나 당 있어서 짠 거 먹으믄 안 돼. 엄마나 많이 먹어


할매: 아따 그놈에 당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없고만. 죄다 못 먹어서 어쩐다냐


딸: 건강은 유전이야 유전


할매: 얼레? 뭔 소리여 나는, 우리 식구는 당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나도 건~강하고 이날 이때껏 병치레 한 번 한적 없다잉


딸: 아빠가 당뇨로 돌아가셨잖아


할매: 아따 그것은 느그 아버지가 퇴직하고 맨날 소주를 하루에 세병씩 퍼마신게 그렇게 된 것이고


손자: 세 병이요? 날마다?


할매: 그려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한 병씩 먹었응게 세 병, 퇴직하고 적적한 게 맨날 술을 그렇게 세 병씩 잡솼어. 근게 그렇게 안됐냐. 아야 너는 절대 술 그렇게 많이 마시면 안된다잉


손자: 요새 술 안 먹어요. 대학 대닐 때나 좀 마셨지


할매: 그려 술 마시믄 안된다잉. 건강 관리를 잘해야 혀. 할매 봐라 평생 일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닌게 이리 안 건강하냐. 사람은 부지런해야 혀 술 퍼마시지 말고


손자: 안 마신다니까요 ㅋㅋㅋ


할매: 그려 이 할매는 촉이 좋아. 가끔 꿈을 꾸면 그게 잘 맞는다잉. 안 좋은 꿈을 꾸면 꼭 누가 죽었어. 최근에 꿈이 안 좋았는데... 긍게 맘이 좀 불안혀. 누가 나를 잡으러 온 것인가 해갖꼬 근다잉, 근디 내가 꿈에서 나 아직 갈 때가 안되았응게 다음에 오소 하고 시커먼 그림자를 내쫓아 브렀어. 긍께 그것이 스르륵 하고 갔당게.


딸: 주방 싱크대랑 싹 다 교체했고만?


할매: 아따 아까 내가 안그냐 지붕이랑 샷시랑 싱크대랑 다 고쳐주고 갔다고, 근디 그 싱크대가 아랫부분이 뭐가 잘 안맞았는디 막둥이가 솜씨가 좋다잉. 뚝딱뚝딱하더니 고쳐놓고 가브렀어. 그것은 그렇고 여 팥죽 사다논거 있는디 먹을 쳐?


손자: 아니요 할머니. 저 방금 밥을 먹고 와서...


할매: 아따 밥은 밥이고 팥죽은 간식인디 쪼매 먹어봐라


손자: 아뇨 배가 너무 불러서요 지금


할매: 아따 배가 그렇게 짝아서 어따 쓴다냐잉


딸: 쟈는 냅둬. 엄마랑 나랑 먹게. 쟈는 맨날 배부르다고 뭐슬 안먹는디야


손자: 아니 배가 불러서 못 먹는 것을 뭐라고 한디야


할매: 그려 그라믄 너는 안방에 가서 티비라도 보고 있을라냐? 가만있어봐라 전기장판 켜줄텐게


손자: 아뇨 안 추워요 할머니. 티비 볼 것도 없어요. 핸드폰에 볼 것이 훨씬 많아요.


할매: 그냐 그거시 째~깐 해갖고 머시 보이긴 한다냐. 할매는 티비 없으면 심심해서 할 것이 없어. 티비가 친군디


손자: 요즘 젊은 사람들은 티비를 안 봐요 할머니~

할매: 그냐 이거 팥죽 맛있는디 어제 시장에서 사온거여. 맛집이다이 여기가, 장날이믄 사람들이 드글드글혀 할매들이 장보고 밥 사 먹는다고 줄을 서 있당게. 자식들 오믄 준다고 포장도 해가고, 어제는 사람이 없어서 금방 사왔당게? 이것을 꼭 먹어 봐야는디. 할매들이 기어서라도 나온당게, 어떻게든 움직일라고 기어나오는개벼 못 걸어 다니면 바로 요양병원 행인게. 거기 들어가믄 산 목숨이 아니여. 그래서 내가 유모차라도 끌고 살살 걸어 다니는 것이다. 약도 먹고, 아이고 그것이 산 것이다냐. 저번에 한약 먹는디 써서 아이고 못 먹겠어서 약 한입 먹고 김 한 조각 먹고 그랬당게. 써서 싫어야


손자: 할머니 나이가 되어도 쓴 것이 싫어요?


할매: 응~ 쓴 것 싫어. 단 것이 좋다잉 애기처럼


손자:그렇구나. 다음에 올 땐 내가 팥죽 좀 사 가지고 올게요.


할매: 됐다. 뭘 그런것을 사온다고 해싼냐 너 바쁜게 오지 말어. 얼른 가봐라 바쁘담서~


딸: 그래 엄마 우리 갈게~ 나오지 말어 다음에 또 올게~


손자: 갈게요 할머니. 문 잘 잠그고 따뜻하게 하고 계셔~


할매: 그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얼른 가거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