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만 동동 구르네

언젠가 소설이 될 이야기

by 정 호

본 내용은 픽션입니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사는 대로 사네 가는 대로 사네 그냥 되는 대로 사네
사는 대로 사네 가는 대로 사네 그냥 되는 대로 사네
그 나이를 처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그 나이를 처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작사/작곡 - 신해철
노래 - 크래쉬
곡 -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두 가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개인에게 신해철은 네가 진짜로 원하는 걸 찾아가라고 호통친다. 문제는 나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무엇을 선택했을 때 덜 괴로울지, 더 행복할지를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점이다.


욕망 1 :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욕망 2 : 나는 승진을 하고 싶어.

-------------------------------------


욕망 1: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어. 나는 작가가 될 거야.


욕망 2: 그래? 승진은? 승진해서 교장이 되고 싶었던 것 아니었어?


욕망 1: 몇 년 동안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글을 써보니 글 쓰는 일이 너무 재미있고 승진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 것보다 글 쓰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나에게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아.


욕망 2: 정말? 확실해? 그것은 그냥 잠깐 반짝이다 사그라들 그런 감정은 아닐까? 승진 준비를 하면서 글을 써도 되잖아. 뭐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쓰겠다고 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 거야? 글쓰기야 적당히 취미로 하면 돼.


욕망 1: 취미로 해도 되지만 조금 더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둘을 병행하기엔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승진 가도를 달려가는 선배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


욕망 2: 정말 그럴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야 결국 인정의 욕구를 위해 달리는 존재라고, 별일 없으면 60까지 이 조직에서 일을 할 텐데 승진하지 않고 그 나이까지 버틸 수 있겠어? 결국 외부의 시선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인간이라고.


욕망 1: 작가가 돼서 인정 욕구를 채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외부의 인정에서 정말 만족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어.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때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욕망 2: 정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 아니야? 너는 아직 완전히 자신에게 몰입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아. 진정 자신에게 몰입하는 사람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


욕망 1: 정말 60살까지 이 조직에서 일할 수 있을까? 이렇게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는데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앞으로 30년 동안 지금과 같은 조건을 유지한 채 존속될 수 있을까? 유지될지 변형될지 불확실한 대상에 내 인생을 걸어야 되는 걸까? 차라리 글을 쓰면서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는데 힘을 쓰는 것이 격변의 세상에 더 경쟁력을 갖추는 일은 아닐까?


욕망 2: 작가가 되는 것은 확실한 일일까? 세상에 확실한 일은 없어. 책을 한 두 권 쓴다고 해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할까? 그보다 차라리 승진을 준비해서 조직 안에서 인정받고 목소리 큰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아닐까?


욕망 1: 승진을 한다고 해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승진과 인정의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오히려 자리에 걸맞는 퍼포먼스를 내지 못한다면 승진을 하지 않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자리에 앉아 화를 당하는 일은 흔한 일이야. 나는 리더의 자리에 걸맞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욕망 2: 너무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일에 뛰어들어봐야 알게 되는 법이야. 그 길로 들어가 보지도 않고 그렇게 입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두려워서 피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들어가 보고 정 힘들다 싶으면 그때 가서 되돌아 나와도 돼.


욕망 1: 그때 가서 되돌아 나올 수 있을까? 인간은 매몰비용 때문에 정성을 쏟아부은 일을 되돌리기 어려워하지. 완공 이후 부실공사로 무너져 내릴게 뻔한 건물을 꾸역꾸역 지어 올리는 일만 봐도 인간이 얼마나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기 어려워하는 존재인지 알 수 있어. 게다가 되돌아 나왔을 때 이미 날려버린 시간이라는 기회비용은 아까워서 또 어떻게 할 텐가. 아마 평생을 후회하며 살아가겠지.


욕망 2: 해본 일과 해보지 않은 일 중 무엇이 더 큰 후회를 가져오는지 이미 잘 알고 있지 않나. 날려버린 시간은 물론 아깝겠지만 그 반대편에는 승진대열이라는, 가봤기에 더 이상 후회되지 않는 일도 동시에 존재하지. 하지만 달려보지 않은 채 작가의 삶을 곧바로 선택해버린다면 어떨까? 날려버린 시간은 없을 테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영원히 남지 않을까? 게다가 작가로서도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내지 못한다면 어떡하려고? 그저 혼자서 쓰는 글에 만족한다고 한다면 지금 정도로 충분한 것 아니야?


욕망 1: 그 말도 맞아... 사실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남을 것이라는 점은 공통의 문제지.


욕망 2: 아니 그런 공통점은 없어. 작가의 삶을 선택한다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남지만 승진의 길을 선택한다면 작가의 삶을 병행할 수 있지. 승진의 길은 되돌아갈 여지가 있지만 작가의 길은 반대편으로 되돌아 올 여지가 없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더 삶에 몰입할 수 있을지 잘 생각해봐.


욕망 1: 굳이 따져보자면 작가의 삶을 살게 되었을 때 더 몰입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네. 승진의 삶은 너무 고달프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 행복하지 않고 고달픈 삶에서 몰입이 가능할까? 교장이라는 목표가 정말 나를 20년 동안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까?


욕망 2: 욕망은 일시적이지만 결과물은 적어도 너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는 영원하지. 작가라는 욕망은 언제 사그라들지 모를 불씨와 같아, 하지만 교장이라는 타이틀은 죽을 때까지 너를 꾸며줄 거야.


욕망 1: 교장 그것이 무엇이라고... 교사 집단 안에서나 대우받고 존중받는 직함이지 밖에 나가면 그저 똑같은 배 나온 아저씨일 뿐 아닌가.


욕망 2: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 안에서 존재를 규정하지. 평생 어떤 사람들과 가장 많이 어울릴 것 같은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종의 사람들과 가장 많이 부대끼며 살아가지. 유럽에서 여러 가지 테스트 결과와 사람들의 인식에서 아우디가 벤츠를 앞서고 있으면 뭐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차 하면 그저 벤츠인 것을. 언어는 우리의 정신과 삶을 규정한다는 소쉬르의 말처럼 우리는 늘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구조 안에서 규정되네.


욕망 1: 그게 바로 문제라는 거야. 그 구조는 내가 만든 구조가 아니야. 승진이라는 욕망은 나의 욕망이 아니네. 사회의 욕망이고 타인의 욕망이지. 나는 구조에 함몰되고 싶지 않아.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싶어.


욕망 2: 그럼 그렇게 하면 되지 뭐하러 이렇게 뻘짓을 하고 있나. 이미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야. 타인의 욕망이건 사회의 욕망이건 그것이 내 안에 얼마 정도 흘러들어왔다는 것을.


욕망 1: 맞아.. 사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네. 그것이 어쩌면 외부의 욕망이 나의 욕망으로 스며들어온 셈인지도 모르겠군. 한 평생을 나 하나만 생각하며 모든 결정을 진행해왔어.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그들의 욕구에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을 난생처음 해봤네.


욕망 2: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핑계 삼는 건가? 참으로 우유부단한 사람이군. 핑계 대지 말고 그냥 우리 솔직해지지. 너는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싶고, 타인의 인정도 받고 싶은 거야. 어쩌면 편하게 살고 싶지만 성취는 하고 싶어 하는 놀부 심보 인지도 모르겠군.


욕망 1: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때때로 승진 대열에서 벗어나는 것이 주류를 벗어난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네. 그런데 승진하는 교사는 5%도 안된다고 하는데 5%가 왜 주류이고 95%가 비주류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네.


욕망 2: 우리는 구조 안에 종속되기 때문이야. 학교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누구인가. 승진대열에 서 있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학교를 굴러가도록 많은 일을 하지. 학교는 아이들과 생활하는 곳이지만 교실 안의 작은 움직임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그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사들과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더 많지. 소수의 커다란 목소리가 더 자주, 더 크게 들리기 때문에 소수가 마치 주류인 것과 같은 착각이 들게 되는 셈이지. 피라미드 형태의 관료제 조직이란 애초에 그런 구조야. 이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을 막아낼 방법은 없네.


욕망 1: 사실 이런저런 이유들도 있지만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기보다, 승진의 길을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현재를 살고 싶기 때문이야. 승진이라는 것은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려서 말이지. 불확실한 미래에 저당 잡혀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게 될 것만 같단 말이야.


욕망 2: 그것 좀 한다고 해서 현재의 즐거움이 뭐 얼마나 침해된다고 그러나. 승진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충분히 즐겁고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간다네.


욕망 1: 당연하지, 다만 나는 그것에 계속해서 조금이나마 신경을 쓰면서 애매하게 슬쩍 발을 걸쳐둔 채 살아가는 것이 싫다는 소리야. 이쪽이면 이쪽, 저쪽이면 저쪽의 삶을 살고 싶은데 애매하게 발을 걸쳐 둔 탓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이 되어가는 것 같아.


욕망 2: 달리 말하면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쥐고 살아간다는 것 아닌가? 어느 쪽에서 기회가 올진 모를 일 아닌가.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간이 지나 조금 더 확실해지는 쪽으로 배팅하는 것은 어때? 게다가 듣다 보니 글 쓰는 것이 정말 좋아서라기보다 승진이라는 길이 고되고 귀찮아 보여 회피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욕망 1: 글 쓰는 일은 나에게 분명 즐거움을 주는 일이네. 그런데 자네 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네. 도망자처럼 바라볼까. 패배자처럼 바라볼까. 주변에 승진을 생각하며 달려가는 친구들이 많아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네. 자네 말처럼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며 어떤 언어를 나누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의 생각은 영향을 받게 되니 말이지. 그리고 가끔은 스스로도 그런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하더군. 내가 편한 길로 너무 일찍 도망가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말이야.


욕망 2: 그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아직 창창한 사람이 왜 그리 지레 겁을 먹고 벌써부터 난리냔 말이야. 일단 해보고 영~ 안 되겠으면 나중에 돌아가도 될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자네에겐 있어.


욕망 1: 정말 시간이라는 것은 충분한가? 나는 스무 살에 죽을 뻔했던 적이 있지. 그때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네. 삶이란 생각보다 무척 연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죽는 날이 100살이 될지, 50살이 될지, 내년이 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늘 현재를 살아가자고 부르짖는 것 아닌가. 게다가 한 번 발을 들이면 방향을 틀기 어려운 것은 양쪽 어느 길이건 마찬가지일세.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쓰고 싶은 열망과 쓸 거리들이 가슴과 머리에 동시에 피어오르고 있지만 나중으로 미뤄두는 순간 머리와 가슴은 동시에 차갑게 식을 걸세. 나중은 없어, 아마 그렇게 되겠지, 그렇게 될 거야.


욕망 2: 삶은 늘 변화무쌍하지.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다가올 때도 많고 말이야. 글쓰기에 대한 감정이 진짜일까. 획득하여 변치 않고 존재하는 명함과 지위가 진짜일까. 자네는 자네의 감정을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나?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닌가? 승진이 20년 동안 자네를 움직이게 만들 동력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나도 한 번 물어봄세, 글쓰기에 대한 마음은 몇 년이나 자네를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거지? 내부의 동력과 외부의 동력 중 무엇이 더 강력할 것 같은가? 사람들은 내적 동기가 더 중요하다고들 흔히 이야기하지. 하지만 정말 그런가? 보다 끈질기고 다소 질척거릴지라도 끝까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것은 외부의 동력이었던 때가 더 많지 않은가? 잘 생각해보게.


욕망 1: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결정을 해야 될 때가 다가오고 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군


욕망 2: 나도 마찬가지야. 도대체 왜 이런 걸로 고민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