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픽션입니다.
청춘의 앞날을 응원하기라도 하려는 듯 따스한 햇살이 온 힘을 다해 쏟아져 내리는 4월의 어느 오후, 날아가는 한 쌍의 나비를 바라보며 두 청년은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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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알에서 애벌레로 부화해 번데기 시기를 거쳐 나비로 진화하는 곤충의 한살이를 지켜보고 있으면 우리네 인간의 일생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B: 그건 또 무슨 소리야.
A: 이 좁아터진 원룸 방 말이야. 여기가 꼭 갑갑한 번데기 껍질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깨부수고 나가고 싶어도 쉽게 깨부술 수가 없는 그런 단단한 갑옷, 아니 갑옷은 나를 보호해주는 기능을 하니까 갑옷이라기보단 감옥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나으려나?
B: 그러니까 이 집이 번데기 껍질이고 너는 그 안에서 나비가 되기를 꿈꾸는 애벌레다..? 뭐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거야?
A: 대학생들 사는 것 보면 그런 생각 안 들어? 원룸이건 투룸이건 쓰리룸이건 방이 한두 개 더 있냐 없냐 차이일 뿐이지 결국 똑같이 생긴 건물에 일정 시간 동안 갇혀서 우르르르 몰려 들어갔다가 우르르르 몰려나오는... 아침 아홉 시, 저녁 여섯 시 즈음에 집에서 나오고 들어갈 때면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도 번데기랑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그런 생각.
B: 그래? 그럼 나는 2년짜리 번데기고 너는 4년짜리 번데기네? 키야~ 너는 이 갑갑한 번데기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4년이나 기다려야 된다니 어쩌냐? 큰일이네
A: 4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게 뭐냐. 우리 과는 고시 준비하는 선배들이 많아서 4년 만에 졸업하고 나가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어. 나비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버티기에는 너무 긴 세월이란 말이지. 대학 생활은 낭만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그 소리를 처음 한 사람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찾아가서 주둥이를 한 대 후려 쳐주고 싶을 지경이다.
B: 뭘 새삼스러운 소리를 하고 있어. 야 그렇게 갑갑하면 원룸 말고 학교 후문에 있는 아파트로 옮겨. 연식이 좀 돼서 그런가 가격은 이 동네 원룸들이랑 비슷하던데?
A: 아니... 공간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나는 시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어. 그냥 너무 막막하고 아깝고 답답한... 뭐 그런 거 있잖아
B: 고래~~? 그런 거였어? 요즘 생각이 많이 복잡하구나? 네가 요즘 한가한가 보다 나는 요새 과제하랴 아르바이트하랴, 며칠 전엔 여자 친구한테 차였다? 왜 차인 줄 아냐? 한번 맞춰봐
A: 뭐 뻔한 걸 물어. 네가 또 차일만한 짓을 했겠지.
B: 그렇게 말하니까 좀 슬퍼지려고 하네. 일주일에 두 번 만나냐 세 번 만나냐 가지고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차여버렸다. 아니 아르바이트하랴 조모임하랴 바빠 죽겠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나면 충분한 것 아니냐? 두 번이나 세 번이나 뭐가 다르다고 그렇게 목을 매는지 원....
A: 그러게. 뭐가 다르다고 그렇게 뻐팅겼어. 그냥 세 번 만나면 될 것 갖고
B: 이 보세요. 내가 방금 말했냐 안했냐. 시. 간. 이. 없다고요.
A: 그래 맞다. 늘 시간이 문제지. 근데 그건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여자 친구 상황을 내가 전부는 모르지만 그런 걸로 싸웠을 정도면 너를 무척이나 사랑했거나, 너를 만나는 시간이 그 아이에겐 숨통을 틔워주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잖아.
A: 부처 나셨네 부처 나셨어. 그렇게 이해심 넓고 생각이 깊은 분께서 방구석에서 번데기 생각이나 하고 있냐?
A: 나는 수업이 없을 때 원룸 안에 있으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마치 물속에서 잠수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물속에서 숨을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참기 힘들어지면 수면 위로 올라와 거칠게 숨을 들이마시듯, 이 자그마한 방구석에서 꾸역꾸역 어떤 시간을 참아내다가 수업 시간이 되면 겨우 호흡을 하러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
B: 하... 너 같은 놈들이 꼭 사고를 크게 치던데. 죽지 마라 친구야~ 알았지?
A: 우리는 이 안에서 무엇을 기대하며 이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걸까? 너는 2년 뒤에 네가 뭐가 되어 있을 것 같아?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을까? 꿀벌이 되어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다 해내고 있을까? 독수리가 되어 세상을 호령하게 될까? 아니 아무렴 날기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을까?
B: 글쎄 뭐가 돼도 지금보단 낫지 않겠어?
A: 그럴까? 뭐가 되긴 될 수 있을까? 번데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라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어. 바다거북의 부화율이 0.5퍼센트가 안된다는 글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어. 천 마리의 알을 낳으면 다섯 마리가 채 안 되는 거북이만 부화한다는 말이지. 우리는 어떨까?
B: 너무 그렇게 암울하게만 생각하지 말자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친구야. 다 잘 될 거야. 돈 기브 업.
A: 오랫동안 여기서 자취생활을 하던 선배들이 짐을 싸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가끔 볼 때면 무리에서 홀로 이탈되어버린 철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날개가 찢긴 잠자리가 어떻게든 날아보겠다고 버둥거리는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하고. 그 날개는 누가 찢어버린 걸까? 스스로 날개를 찢는 잠자리는 없었을 거야. 무심한 어린아이들의 유희를 위해 희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테지.
A: 그렇게 모든 걸 구조 탓, 외부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좀 편해지니? 결국 다 본인의 선택일 뿐이야. 번데기로 남든 잠자리가 되든, 결과를 낼 수도 있고 못 낼 수도 있는 거고, 너무 공상에 빠져 살지는 말자고. 고민이 있을 땐 말이야. 심장이 터질 것 같을 때까지 일단 힘껏 뛰어 보라고. 생각은 그다음이야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