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앞에서 나는 언제나 녹아내린다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느끼는 설렘과 두려움

by 정 호
노을 앞에 서면 언제나 나는 녹아내리고 만다.


홀로 조용히 흠모하는 마음에 자주 찾아보고 싶지만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삶의 순간순간에 잠시 생겨나는 틈새 사이에,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면서 무에 그리 힘든 일이라고 아주 가끔씩 끙끙대며 어렵사리 발길을 옮겨본다. 힘겹게 마주한 아련한 그 모습 앞에서 철렁이며 가슴이 내려앉는 이유는 설레기 때문일까 두렵기 때문일까.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고 설렘을 안겨준다. 하루 종일 밝게 빛나며 세상을 비추고 있을 때보다 금세 자취를 감출 것처럼 아래로 아래로 하강하는 너의 모습에 더 끌리는 이유는,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공감 때문일까. 쨍쨍하게 밝은 햇빛보다 마지막 빛을 내며 포근하고 따듯함을 전해주고 어둠 속으로 스러져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을 바라보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헤어지는 연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아련함은 나의 눈을 너로부터 떼어놓지 못하게 한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금세 자취를 감추어버릴 너를 조금이라도 오래 보고 싶어, 내 두 눈으로 잡아당기면 사라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을까 싶은, 턱 없는 기대감으로 조금씩 내려앉는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내일이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주할 수 있으면서도 천천히 얼굴을 돌려 나로부터 멀어지는 너에겐 왜 매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인지, 네가 남기고 간 푸름과 주황의 은근한 잔향만을 느끼려 애쓰며 네가 있던 자리에 발이 묶여 한 발자국도 떠나지를 못한다.


함께 바라보는 노을도 아름답기는 하나, 노을을 가장 황홀하게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은 홀로 대면하는 것이다. 따스하고 안락한 노을의 품에 안겨있을 때면 세상에 근심을 잠시 잊을 수 있어 좋다. 어떤 때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마주한 듯, 가만히 있어도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과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웅장하면서도 소박한 듯하고 화려하면서도 단출한 듯 한, 무한함과 유한함을 동시에 품고 있는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너는 정말로 아름답다. 아직 말을 떼지 못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울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부족한 나의 언어로는 너를 충분히 담아내기 힘들어 나 역시 답답한 마음에 울음이 터질 것도 같다.


노을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유한함을 느끼게 만들어 순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짐을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다짐의 시작에는 슬픔이 있다.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나의 삶 역시 저물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기울어지고 소멸해 가는 과정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일까. 어떤 이유가 되었건 유쾌하고 상큼한 기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생각해 보면 약간
마이너 한 성향을 가졌던 것 같다.


H.O.T보다는 젝스키스를 좋아하고, 동방신기보다는 SS501을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남들이 다 맞다고 하는 길은 왠지 거부감이 생겼고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서 항상 왜 그래야 하는지 묻느라 시간을 잡아먹기도 했다. 챔피언보다는 도전자에게 눈길이 더 가고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아이들보다는 사고뭉치에 어딘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신경이 쓰인다.


기울어져 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노을도 그런 이유에서 사랑을 하게 된 것일까. 떠오르기보다는 내려가는 것, 밝게 빛나기보다는 곧 꺼질 것만 같은 것, 흥하는 것보다는 쇠해가는 것, 똑바로 서있기보다는 약간은 기울어져 있는 것. 그런 것들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기형도 시인의 노을이라는 시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


노을은 어쩌면 혼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자마저 사라져 완벽히 혼자가 되는 시간. 곧 그런 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노을은 천천히 하지만 순식간에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가 되기 위한 시간을 혼자서 맞이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참 처량하고 슬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인생인 것을 알아차린다면 넋을 놓고 슬퍼만 할 일이 아니라 덤덤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봐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