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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n 27. 2022

부채감은 무엇인가

그놈 참 어렵다

부채감이란 어떤 마음이고
우리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부채감이란 빚진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신세를 입어 그것을 갚아내야 후련해질 것 같은 마음. 이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다.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이 쌓여있을 때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마음의 빚, 즉 부채감을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무게감 역시 상당하다. 우리는 각자 다른 종류의 부채감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586세대에 속하면서도 당시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시대와 동세대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 대변혁의 시대에 힘을 보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불의에 저항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피 흘리는 동료를 외면했다는 자괴감,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몽매함. 이런 여러 감정들이 얽히고설켜 부채감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런 부채감은 때때로 이성적이지 못한 판단을 내리도록 만드는 결정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자라난 자녀들이 부모에게 부채감을 느끼기도 한다. 부모의 헌신과 사랑을 알기에 부모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워하고 부모의 결정과 판단에 반기를 들기 어려워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이 허튼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 역시 수긍하기 때문에 그들의 부채의식 역시 상당히 단단하게 짜여 있어 드라마의 엇나가는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단골 설정으로 등장하곤 한다.


이런 부채감의 특성을 알고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부채감을 심으려는 자들이 있다. 사람을 다루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혹은 어떠한 형태로든 타인으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바로 그러하다. 인사권자들 혹은 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주요 스킬은 타인의 마음에 빚을 지우는 것이다.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의도가 담긴 작은 호의를 베푼다거나 고마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일을 자꾸 고맙게 생각하도록 가스 라이팅을 하는 것이다. 이는 영업이나 인사 관련 서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다. 세상 그렇게 퍽퍽하게 살 것 있냐고,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고, 왜 사람의 호의를 곡해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의도가 담긴 호의는 의도가 달성되거나 사라지는 순간 물거품처럼 녹아내린다.  


부채감은 부정적이고 불편하기만 한 감정일까?


모든 감정이 그렇듯 부정적인 방향으로 폭발시키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고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면 아름다운 동력원이 다.


부정적인 조타수를 만날 때 부채감은 자책, 분노, 회피, 남 탓, 뻔뻔함으로 그 모습을 바꾸며 부채감을 준 대상을 오히려 공격하기 시작한다.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부담감을 안겨준 대상이 내 인생에 지나치게 간섭하려 할 때, 오히려 그 대상을 저주하고 공격함으로써 점점 커져만 가는 부채감을 터뜨려 대상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부채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능하고 긍정적인 조타수와 마주한 부채감은 보은, 환원, 삶의 동력과 같이 전혀 다른 형태로 탈바꿈한다. 자신이 입은 은혜를 갚아내기 위해 악착같은 노력을 하기도 하고, 받은 것 이상으로 되갚아 주어 순환의 미덕을 발휘하기도 한다. 부모에서 자녀로, 또 그 자녀에서 자녀의 자녀로, 아래 세대로 무한히 전해지는 가정 안에서의 내리사랑이나 학창 시절 은사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가르침에 따라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우가 부채감의 긍정적 환류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부채감은 잘만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삶의 동력원이 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 시절 의지가 되어던 두 친구가 있었다.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며 공허할뻔한 시간을 함께 채워주었던 A군, 미래를 꿈꾸고 함께 도약을 약속하며 힘든 시절 이를 악물고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준 B군, 두 친구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늘 잊지 않고 살았다. 그 기분 좋은 부채감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커다란 뼈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부채감은 어려운 감정이다. 주고 싶다고 주기도 어렵거니와 주기 싫다고 주지 않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부채감은 전적으로 받는 사람이 주도적으로 형성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고마워해야 할 상황에서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애초에 부채감 따위의 감정을 품지 않는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될 일에도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필요 이상의 부채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또 오해가 쌓이고 서운함이 쌓인다.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부담스럽다며 나를 피하는 사람(과도한 부채감), 나 같았으면 고마워서 무엇이라도 답례를 했을 것 같은데 입을 닦는 사람(과소한 부채감), 그리고 이런 감정을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 그래서 늘 누군가는 서운하고 누군가는 덤덤하며 누군가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부채감은 그래서 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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