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친한 동기 둘이 갑작스레 여름방학에 농촌 일손 돕기 봉사활동을 다녀오자고 꼬셔댔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방학인 대학의 특성상, 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방학이 시작하면 무얼 하며 놀까, 어떻게 쉬어볼까 고민이었는데 피곤하게 봉사활동을 가자니 이게 웬 말인가. 게다가 봉사활동 기간엔 생일이 끼어있었다.
어떤 핑계로든 술판을 벌이기 좋아했던 시절이었기에 생일이라는 주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진탕 술을 마시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곗거리였다. 그런 좋은 기회를 내팽개치고 시골에 가서 논밭 일을 할 생각을 하니 전혀 내키질 않았다.
하지만 농활을 제안한 두 친구는 끝없이 나를 설득했다.
그 어떤 생일파티보다 기억에 남는 파티를 만들어 주겠다고온갖 미사여구를 남발하며, 그곳에 가면 마치 천국이 기다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간사한 세치 혀를 놀려댔다.
감언이설에 속아 결국 농활행 버스에 몸을 싣고 얼마간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쏟아지는 고된 농사일과 저녁이면 반복되는 술판으로 몸과 정신이 동시에 고됨을 느끼며 다른 생각은 모두 사라지고 그냥 누워서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끊임없이 되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워서 쉬면 안 된다거나 하는 식의 이상한 규율도 많았고 봉사활동이라는 명목 하에 너무 혹사당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때 그 일주일의 시간은 참 느리면서도 빠르게 지나갔다.
나를 설득했던 두 명의 친구와 나는, 각자 친했던 후배들과 친구들을 서넛씩을 데리고 왔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15명 내외의 인원이 모여 한 마을에 배정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열다섯 명 내외의 대학생들은 일주일의 고된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갔고 천천히 가까워졌다.
농활 기간의 중간 즈음에 내 생일이 끼어있었다. 모두 일손을 돕느라 바빴고 근처엔 슈퍼마켓 하나 없는, 오직 보이는 것이라곤 논과 밭뿐인 마을회관에서 다 함께 숙식을 하고 있었으며, 대학생 신분으로 당시 자차를 소유한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생일파티에 대한 기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니 생일파티를 생각하고 말고 할 기력이 없었다. 파티를 한다고 해도 놀 체력이 없었기에 그때는 그냥 생일이고 뭐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뭔가 낌새가 느껴졌다. 뱉어놓은 말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 생일을 핑계로 그저 장난을 한 번 치고 싶었던 모양인지 나를 속이기 위한 어설픈 몰래카메라가 시작되었다.
어제까지 예의 바른 모습의 표본이었던 후배 두 놈이 갑자기 밥을 먹다가 싸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여기서 눈치를 챘지만 고되고 바쁜 와중에 나를 위해 몰래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이벤트를 준비했을 정성을 생각하니 그들의 열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속을 감추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던 나는 그저 티가 안 나도록 고개를 숙이고 밥을 꾸역꾸역 떠먹는 것 말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몰래카메라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싸움은 점점 클라이맥스에 다다랐고 이놈들이 도대체 어떻게 끝을 내려고 이러나 싶은 마음에 있는 힘, 없는 힘을 다해 웃음을 참아내고 짐짓 화난 척을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만해"
몰래카메라인 줄 다 안단 말이야 제발 그만해, 너희들의 어색한 연기도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으니 제발 그만해, 생일 파티고 이벤트고 다 괜찮으니까 이런 거 하지 말자 그만해, 어우 농활 힘들다 그만하고 집에 가자.
온갖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한 마디의 절규였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는 내가 속아 넘어가서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형~~ 몰래카메라였어요~ 생일 축하해요~~"를 외치며성공적인 몰래카메라를 자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초코파이에 양초를 꽂아 두었던가.. 아무튼 가까스로 케이크의 형태를 갖춘 케이크 비슷한 빵 덩어리를 주방에서 꺼내오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며 그간 생일에 무얼 했나 가만히 돌아보니 결혼 전까지는 그저 친구들과 함께 술을 퍼먹었거나 술을 퍼먹었거나, 또 술을 퍼먹었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유독 그때의 생일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낯선 공간이라는 특수성도 한몫했을 테지만, 그보다는 나라는 한 사람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무언가를 공들여 준비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농활이 끝난 이후로도 그 무리는 특정한 추억에 힘입어 한 동안 친하게 어울려 지냈다.
대학시절 여느 모임들이 그러하듯, 끈끈하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모임 역시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그 관계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손길은 하나둘씩 흐려져갔다.
세월 앞에서 영원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공허한 외침인지 우리는 종종 자각한다. 그 시절 함께해서 즐거웠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그때와 같지 않다고 해서 탓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의 시간 한편에 좋았던 시절, 함께해서 행복했던 시절을 선물해 준 고마운 인연들에게 감사하며 가끔 생각날 때 한 번씩 꺼내어 되새겨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