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과 밤 산책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시각의 인지력 차이에서 발생한다. 외부를 인식하는 데 있어 인간의 오감 중 시각이 차지하는 비율이 80% 이상이라는 글을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난다.
혼자 하는 밤 산책은 무뎌진 오감을 예리하게 정돈하는데 도움이 된다. 어두운 밤이 되면 시각이 본래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기 때문인지 나머지 네 개의 감각은 시각의 빈자리를 채우려 기민하게 발동한다.
별생각 없이 뚜벅뚜벅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평온한 적막에 갑작스레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이기 때문일까. 어두운 밤 골목의 고요함은 안온함의 상징에서 한 순간에 온갖 불길한 사건의 징조로 탈바꿈한다. 그런 순간에 처한 공포 영화의 주인공에게 늘 뒤돌아보지 말고 얼른 뛰어가라고 외쳤던 것이 무색하게도 조심스레 뒤를 슬쩍 돌아보는 나와 마주할 때면 멋쩍은 안도감과 함께 괜스레 그 자리가 어색해져 서둘러 달려 나가곤 한다.
고요함 속에서 울어대는 개구리와 매미의 울음소리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한다. 개굴개굴 매앰매앰 울어대는 두 생물의 맑은 울음소리는 여름밤의 청량함을 충분토록 느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런 자연의 소리들 역시도 흐릿한 불빛이 가까스로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골목길에서는 한순간에 오싹한 배경음으로 뒤바뀌곤 한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 울음소리 너머에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공포감이 엄습한다.
꼭 좁고 어두운 골목이 아니더라도 상가 건물과 아파트에서 조금만 거리를 두고 걷게 되면 네온사인에서 쏟아져 나오는 알록달록한 형광의 불빛들은 쉽게 자취를 감춘다. 생기를 잃은 듯 희미하게 빛나는 푸르거나 누런 가로등은 남은 힘을 가까스로 짜내듯 힘겹게 발광하며 그 자리를 지킨다. 선명하게 발색되지 않는 탁하고 희미한 가로등의 빛깔은 때때로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안개가 조금 끼어있거나 헤드라이트를 켜 둔 승합차 한 대가 길가에 주차되어 있으면 분위기는 더욱 그럴싸 해진다.
비에 젖은 낙엽 냄새처럼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풀냄새는 부비동과 폐를 지나며 상쾌함을 선물한다. 비오기 전 차가운 밤공기의 냄새는 쓸쓸하면서도 신비롭다. 이런 감각을 느끼면서 규칙적인 호흡을 내뱉으며 러닝을 하다가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콧속으로 들어오는 담배 냄새를 마주할 때면 미처 인식하지 못한 낯선 자의 기척이 갑작스레 느껴져 한순간에 경계심을 품게 된다.
달리다 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차마 앞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땅을 바라보며 걷게 될 때가 있다. 캄캄한 밤길이어서 마주 오던 자전거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날 때가 있다. 인식이 닿지 못한 곳에서 갑작스레 출현하는 존재에 대한 놀람은이내 짜증과 분노를 유발한다.
이렇듯 평온함이 두려움이 되고, 청량함이 오싹함으로 갑작스레 바뀌는 이유, 즉 똑같은 외부의 자극을 대하는 나의 감각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시각의 인식 능력이 약해진 탓에 불완전하게 파악되는 인식 대상에 대한 경계심에서 비롯된다.
경계심은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시각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 나머지 감각들이 활성화되었듯 결핍은 분명 다른 측면의 활성화를 가져온다. 모든 결핍된 존재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해질 준비가 되어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밤 산책은 특별함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결핍이 그다지 기분 좋은 상태는 아닐 테지만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도 있을 테다. 과도한 의미부여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삶의 모든 순간을 채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