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가입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daum의 한 카페에 내 계정으로 스팸 게시글이 올라와서 한 달 안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daum 이메일 계정을 정지 혹은 삭제하겠다는 카카오의 경고 메일이었다.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들 때 우리는 공포감을 느낀다.두려웠다. 이메일 하나 정지되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공포심까지 느꼈던 것일까.
이메일은 이제 더 이상 단순히 편지를 주고받는 기능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수많은 플랫폼들은 서로 제휴를 맺고 여러 계정과 사이트들이 통합되어 운영되는 요즘, 자주 사용하는 이메일 주소가 삭제된다는 것은 꽤 커다란 개인 자산의 소멸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과 연계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카카오 계정이 정지된다는 경고는, 그간 써온 글을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경고나 다름없었고 이는 지난 2년의 세월 동안 공들여온 나의 정성과 열정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는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두려움이 찾아왔다. 즉시 이의신청을 했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고 다시 해킹을 당해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이번엔 운 좋게 경고 메일을 제한기간 안에 확인해서 이의신청이라도 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이메일을 한 달 동안 확인하지 못했더라면?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 보니 갑자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유사한 이유로 계정이 정지된 사람들이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찾아봤다. 어렵사리 계정이 복구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몇 달씩 기다려도 복구와 관련된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아, 할 수 없이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주식투자를 하다가 상장폐지를 경험했던 적이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도 손을 쓸 수 없이 그저 내 돈이 휴지가 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감정은 분노와 무기력을 넘어 신체가 떨릴 정도의 공포심을 유발한다. 제왕절개를 하러 수술실에 들어가는 아내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을 때에도 비슷한 종류의 공포를 느꼈다.
공포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서 눈을 뜬 채 두려운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 오랫동안 정성을 쏟아온 어떤 것이 소실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만에 하나 잘못되면 다시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러한 것들이 공포를 자아내는 근원이었을 테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정성을 쏟는다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소중하면 소중할수록, 정성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잃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은 그에 비례해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거대해진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 평생을 바쳐 쫓았던 이상이 좌절되는 경험 같은 것들이 그런 종류의 감정의 극한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오랜 시간 나의 시간과 정성과 온 열정을 다했던 것이 소실되는 경험은 사람을 그로기 상태로 밀어 넣는다. 어쩌면 그런 식의 충격은 한 사람을 도저히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만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