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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03. 2021

혼자 맞는 아침 바닷바람

좋다.

비가 온다.


빗물이 지붕을 지나 바닥을 향해 졸졸졸 흐르며 타다닥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불판 위에서 고기를 지글지글 굽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일상에서 벗어나서 여행지에 잠시 몸을 맡긴 덕에 오감은 더욱 예민하게 외부의 것들을 받아들인다. 아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타인의 고함치는 소리도,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도,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건물 사이를 휘돌아 감으며 펄럭이는 바람소리도, 철썩대는 파도 소리도, 짖어대는 개들의 울음소리도, 모두 일상과는 무관하다는 듯 제각기 소리를 내는 와중에도 묘한 어우러짐이 느껴진다. 여행은 마법이다. 분명 시끄러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전혀 시끄럽게 느껴지질 않으니 말이다.


지난밤 더워서 땀을 뻘뻘 흘렸던 통에 이불속에서 이리저리 뒤척거리면서도, 콧물을 흘리는 아이가 걱정되어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지 못한 채 억지로 잠을 청하다 보니 결국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새 흘린 땀을 씻어내고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오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아내의 수고로움에 빚진 채, 아침 바람을 맞으러 숙소 밖으로 나섰다.


다양한 색상과 모양을 뽐내며 펜션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관광지 한가운데에 홀로 조그마하게 지어진 주택을 한 채 발견했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마당에는 벌써 가족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목가적인 풍경의 전형이었다.


상추에 쌈을 싸서 우적우적 씹고 있는 저 남자는 저 집의 장남일까? 대문을 마주하며 상석에 앉아있는 저 나이 많은 할머니가 이 집의 주인일까? 필요치 않은 호기심은 발걸음을 붙잡는다. 잠시 그곳에 시선을 빼앗긴 채 그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럴 때면 시골 살이나 목가적인 삶에 대한 동경심이 마음 한편에 자그맣게 똬리를 틀지만 그런 삶을 살아낼 용기도 자신도 없어 이내 고개를 휘젓고 만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펜션 거리 안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전망이 탁 트이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야트막한 경사를 통해 사부작사부작 걸어 내려가는 동안 어제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숙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어진 지 오래된 듯 세월의 흔적을 숨기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내버려 아무도 찾을 것 같지 않은 숙소,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화장으로 얼굴을 덮은 스무 살 새내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 리모델링을 진행하여 부조화스러움이 느껴지는 숙소, 새로 지었는지 주변의 것들과 조화롭진 않지만 홀로 반짝임과 웅장함을 뽐내고 있는 신축 숙소들이 마치 처음부터 각자의 자리가 있었던 듯 구획이 나누어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은 동네를 한 바퀴 주욱 둘러보고 나니 어젯밤 온몸에 들러붙어 잠을 쫓았던 끈적이는 땀방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머릿속에 잡상들도 사라진 땀방울과 함께 증발해버리면 좋으련만, 잡상은 산책을 할 때 더욱 증식한다. 오히려 생각에 살이 덕지덕지 붙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도 한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라는 말이 참말이다.


그래도 좋다. 이렇게 고즈넉한 기분이 되어 맞이하는 아침과 바다와 바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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