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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10. 2021

어느 주말 한적한 카페에 홀로 앉아

온갖 것들이 평화를 위해 춤출 때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친척집에 갔다. 가끔씩 허락되는 이런 완벽한 공백의 시간이 생기면 주로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시간이 생기면 어떻게든 친구들과 만날 생각부터 했던 과거와 다르게 이제는 혼자서 무엇을 해야 가장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된다.


오늘따라 집에 있기가 싫었다. 영화를 봐도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었고 책을 읽더라도 어딘가 경치 좋은 곳에 가서 10월의 가을바람을 맞아가며 초록이든 파랑이든 천연의 색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욕구에 허기가 졌다.


그렇게 예쁜 카페, 뷰 좋은 카페, 책 읽기 좋은 카페를 검색하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곳이 하나 있었다. 도시의 외곽에 새로이 지어 올린 카페인데 노란 빛깔의 논이 통창을 통해 정면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책을 한 권 꺼내 들고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혹여나 내가 원하는 자리에 이미 사람이 앉아있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그곳으로 향하는 내내 악셀을 밟는 발에 평소보다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른 시간이어서였는지 아직 입소문이 덜 났는지 다행히 내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손님이 많지 않아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잠시 감각의 세계에 빠져들어 본다.


제초기 돌아가는 소리, 닭 울음소리, 안쪽에서 기분 좋게 접시가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소리, 행여 폐가 될세라 조심스레 흘러나오는 작은 웃음소리들, 어느 외국인 커플의 이해 못할 대화 소리.


외국인 커플이 논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이질적이지만 왠지 모르게 평화로워 보인다. 그들은 어디에서 흘러 여기까지 왔을까. 서울이나 부산도 아닌 작은 도시 안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카페를 그들은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오게 된 것일까.


카페 사장님의 언니인 사람이 내 옆 테이블에 앉아 통화를 한다. 너무 고요하고 한적한 탓에 옆에서 통화하는 내용을 의도치 않게 엿듣고 말았다. 본인 여동생이 두 달 전에 차린 카페에 이제야 찾아오게 되었다는 말, 풍경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말, 평화로움이 묻어난다는 말, 이 카페가 여동생 내외가 그간 살아온 결과물인 것 같다는 말, 사진을 찍어 보내주겠다는 말, 그녀의 말속에는 동생에 대한 애정과 자랑스러움이 느껴져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함께 흐뭇해지기까지 한다.


나도 모르게 지어진 미소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감추며 괜스레 멀리 시선을 던져본다. 왜 조상들이 그토록 산을 그려댔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삼묵법이니 수묵담채니 이게 다 무슨 차이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임용 공부를 할 때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만 이런 경치를 눈앞에 두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산등성이의 걸쳐진 그림자가 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하얀 종이에 까만 먹으로 그 미세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을 조상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자전거를 타고 논 옆길을 유유히 지나가는 노인모습에서 세월 앞에 초연해진 초월자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무엇이 바빠 늘 달리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자연 앞에선 시간의 흐름도 세월의 두려움도 욕망의 고통도 잠시나마 힘을 잃는 것만 같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나뭇잎의 모습, 그 뒤로 보이는 노란 벼의 넘실거림, 그보다 더 뒤에는 무언가를 태웠는지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연한 회색의 연기가 층층이 포개어져 감정을 고양시킨다.


이름 모를 작은 벌레들조차 싫지가 않다. 오히려 이런 곳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인 것만 같다. 신사임당이 왜 풀과 벌레를 그림의 소재로 삼아 초충도를 그렸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모든 것들이 평화와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골손님이 가져다주었다는 고구마를 서비스로 내어주는 카페 사장님의 예상치 못한 선물은 평화에 평화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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