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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불안한 사람들

너와 나의 연결 고리, 연대와 희망을 통해 내일을 밝히다.

by 정 호

인물과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보통 불안 속을 헤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 찬가는 처절하거나 서글프거나 안쓰러울 때가 많다. 그것은 불안과 희망이 애초에 공존하기 힘든 것처럼 느껴져 어색해 보이거나 부조화가 주는 불편함 때문이기도 하고, 양측 색깔이 너무도 달라서 어느 쪽이 바탕이 되었건 간에 대조되는 두 색깔의 명암 차이에 아프도록 눈이 부시기 때문에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안한 사람들"은 유쾌하다. 불안과 희망이 어색하지 않게 연결되면서 차츰차츰 행복으로 나아가는 그 작은 한 발자국들이 소중하고 어여쁘다. 불안이 희망으로 바뀌어가는 중간 지점에는 절묘한 우연들이 연대의 가능성을 한 도막씩 쌓아 올린다. 그렇게 마주치고 모인 우연들은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온기를 전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만든다. 최선을 다해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하라는 것, 그것이 결국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세상에 외치는 하나의 믿음인 셈이다.


스토리 자체도 유쾌하고 재미있다. 통통 튀는 상황들과 편견을 깨나가는 과정들,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 간에 연결고리가 하나둘씩 맞추어지는 재미까지 더해져 이야기의 전개가 주는 재미만으로도 이미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해낸다.


하지만 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부분은 캐릭터의 입체감이었다. 어느 한 명 허투루 등장하는 인물이 없었던 "불안한 사람들"은 모든 인물이 마치 내 주변인인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본 적 있을법한 인물이라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놀랍다. 작가의 탁월한 관찰력이 가장 도드라져 보였던 이유는 중간중간 첨부되는 삶의 통찰에 대한 이야기 때문도, 스토리의 완결성 때문도 아니다. 한 인간을 묘사하는 데 있어 특징적인 부분을 매우 잘 포착하여 그것을 자연스럽지만 아주 도드라지게 표현하여 캐릭터를 살아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인물 표현을 너무도 맛깔스럽게 해낸 부분에 특히 감명을 받아 다른 부분을 다소 가볍게 지나쳤지만 작가는 세상 속에서 개별적인 것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해내는 부분에 있어서도 탁월함을 십분 발휘한다.


어떤 것을 묘사하는 탁월한 표현들, 예를 들면 경찰관 짐과 은행 강도가 마주하며 짐이 은행 강도에게 감화되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깨 위로 늘어뜨려진 머리칼은
짐의 딸과 같은 색이었다.
가끔 딱 한 가지 공통점만 있어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공감대를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그와 동시에 은행 강도가 짐과의 공통점을 느끼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녀는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보았다. 오래돼서 파이고 변색된 은반지였다.
그는 그녀의 결혼반지를 보았다.
얇고 수수하며 아무 보석도 없는 금반지였다.
둘 다 반지를 아직 빼지 않은 것이다.

따듯하다. 본디 세상을 따듯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작가가 되기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겠으나, 이는 해도 너무하다. 이토록 따듯하게 연결 지점을 포착해내는 사람이니 어찌 연대와 사랑을 말하지 않고 배길 수 있으랴...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사라는 거만하고 오만한 상류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인간에 대한 무배려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멸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며 함께 사는 것보다 이기는 것과 목적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제대로 살면 기분 나쁠 일이 없다는 그녀의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가 품게 될 삶의 자세를 우려하게 만든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그녀에게 간단하다. 이기고 돈을 많이 벌어서 남들과 거리를 두는 삶을 사는 것. 그녀에게 돈의 가치는 공간을 사고 남들과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삶의 태도는 죄책감에서 잉태된 강력한 방어기제였다. 다리에서 뛰어내린 남자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10년 동안이나 가방에 넣고 다녔던 것.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금융계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옳지 못한 결과와 만나 그녀를 더욱 괴롭혔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알고 싶으면서 동시에 외면하고 싶어 한다. 이중적이고 오만하며 독단적이다.


다리 위에서 자살한 남자는 경제적 실패를 경험한 모든 부모를 대변한다. 잘했어도 한 번의 실수로 평가받는 게 부모라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딱 한 번의 실수를 저질렀다. 잘 나가는 회사를 차리고 근사한 아파트도 장만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알뜰히 모은 돈으로 투자를 했으나 그것이 그가 저지른 단 한 번의 커다란 실수가 되어버렸다. 리먼 브라더스의 여파로 그는 모든 것을 잃었고 그는 여전히 가족을 사랑했으나 자신을 붙잡을 수 없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이 장면을 목격하는 것으로 연결점이 발생한다는 것은, 우리는 모두 부모가 있고 언젠가는 부모가 되어간다는 생의 굴레를 공통으로 공유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목격하며 삶의 자세와 태도를 다져나가고 누군가로부터 목격당할 수밖에 없는 책임 있는 존재가 되어나간다는 것. 인생이란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심리상담가 나디아는 다리 위에 섰던 소녀였다. 우울했고, 외로웠고, 혼자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랬다. 알아봐 주길 원했다. 나는 누구인가 궁금했던 소녀였다. 방황하는 청춘, 젊은 경찰 야크가 그녀를 다리 위에서 구해낸 이후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심리학자가 됐다. 작가는 이를 통해 선순환의 연결을 말하고 싶었을 테다. 작가의 주제 의식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지만 이 두 인물의 만남에서 가장 단순하고 명료하게 드러난다.


은행 강도는 우연의 희생양이다. 그는 이혼을 했다. 그는 딸들을 별명으로 부른다. 배우자가 자신의 상사와 바람이 났다. 상사보다 약자였던 은행 강도는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떠난다. 물건을 가져가라며 자신의 물건을 창고에 처박아둔 전처의 집에 간다. 창고에서 잠이 든다. 우연히 옆에 있던 장난감 권총을 집어 든다. 집도 절도 없기에 호신용으로 가지고 나온다. 집도 직업도 없는 그에게서 전처는 양육권마저 뺏으려 한다. 이혼한 전처와 아이들이 사는 집에서 가까운 집이 마침 월세로 나왔다. 일단 한 달만 살면 그 뒤에 계획이 생기리라는 막연함으로 월세를 위해 강도짓을 한다. 하지만 은행에는 현금이 없고 도망을 치다가 우연히 그렇게 들고 있던 장난감 총으로 인해 인질범이 되어버린 것이다. 운명은 이렇게 한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인생을 어딘가로 몰고 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가 그가 아니라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내 머릿속에도 그런 편견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다.


그 외에도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척을 한다.


선임 경관은 아들이 늘 불안하다. 돕고 싶지만 늘 방해가 된다. 자주 끼어들고, 원치 않는 조언을 하고 오지랖을 부린다. 마음만 있고 도와줄 게 없는 어른은 괴로워서 불안하다는 말은 참으로 공감이 된다. 아들을 불안하게 여기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자신도 금세 불안해진다.


아들 경관은 착하고 유능함을 입증하고 싶어 한다. 다리 위에 남자를 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뒤로 일주일간 매일 그 다리를 방문하다가 우연히 한 소녀를 구한다. 그리고 그 둘은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하지만 서로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정하게 되는 계기가 서로에게 되어준 것이다.


은행 직원 런던은 딱한 인간이다. sns에 중독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sns에 올라온 유명인사들의 삶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 그녀가 하는 일의 전부다.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도 와이파이를 찾는 그녀의 모습은 한심스럽지만 익숙하다. 콤플렉스 덩어리에 피해망상증 환자다. 젊은 경관의 대수롭지 않은 질문마다 발끈하는 그녀의 모습은 히스테릭함의 표본을 보여준다.


로게르와 안나레나는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 보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고 보는 사람들이다. 리모델링을 해서 되파는 것을 은퇴 이후 업으로 삼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가져갈까 불안해한다. 욕망이 좌절될까 불안하다. 듣고 싶은 말을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로게르의 욕망이자 불안이었다. 안나레나는 은퇴 이후 줄곧 로게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로게르는 전부이자 불안함과 미안함의 원인이었다.


율리아와 로라는 젊은 신혼부부. 그녀들은 여여 커플이다. 우유부단하고 쉽게 취미에 빠지지만 금세 질려하는 로, 하지만 율리아는 그런 로가 좋았다. 약혼자가 있었던 율리아는 자신의 꽃집에 자주 꽃을 사러 온 로와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우습고 꼴불견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가 없다.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몇 개쯤은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결국 희망을 노래한다. 그러니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미시적으로는 나의 모습과 나의 고민, 나의 바람과 나의 욕망을 볼 수 있었고 거시적으로는 인연의 굴레, 세대갈등, 부모 자식 관계, 페미니즘, 모든 차별과 편견, 전쟁, 희망, 금융시스템, 시작과 끝, 만남과 이별, 삶의 태동과 죽음, 죄책감과 용서, 그리고 따듯함의 연쇄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의 제목은 불행한 사람들이지만 이것은 결코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 그리고 선해지고픈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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