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듯함 저축하기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어느 유명인의 피드에 오늘 하루 참 알차게 잘 살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서 가만히 읽어보았다. 본업에 몰두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전념했고 운동도 목표치를 달성했으며 좋은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 충분한 재충전의 시간과 혼자서 가만히 자신에게 몰두하는 시간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24시간의 표본처럼 느껴지는 그의 하루가 부러웠다.
우리는 늘 쳇바퀴 도는 것처럼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다들 바쁘게 시간을 쪼개가며 하루를 알차게 채워나간다. 그럼에도 뿌듯한 감정을 스스로 느끼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많지 않다기보다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합하겠다.
그렇다면 단순히 시간을 쪼개 바쁘게 사는 것으로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오늘 하루 참 잘~ 살았다"는 가슴 벅찬 뿌듯함을 우리는 대체 언제 느끼게 되는 걸까.
고갈과 충전
시간을 소비하고 난 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고갈과 충전이 바로 그것이다. 똑같이 열심히 일을 하고 밤늦은 시간 집에 돌아왔지만 어떤 이는 고됨과 피곤함만을 느끼고 어떤 이는 빨리 내일이 와서 일터로 향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잠이 든다. 같은 "노동"이라는 행위를 통해 시간을 소비했지만 전자에게는 그 시간이 자신을 고갈시키는 행위였고 후자에게는 충전의 시간이었던 탓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 뒤에서 엠뷸런스가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으레 서둘러 차선을 비켜주곤 하지만 옆 차선에 차가 앞뒤로 꽉 차있어 비켜주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길을 막고 있기라도 할 때면 내 마음도 함께 조급해지곤 한다.
며칠 전에는 신호 대기 중인 상태에 뒤에서 엠뷸런스가 다급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바짝 내 차 뒤로 다가오는 것을 알아챘다. 재빨리 좌우를 살피고 깜빡이를 켠 뒤 핸들을 꺾어 옆 차선으로 이동했다. 틔워진 차선을 따라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엠뷸런스를 바라보며 큰일이 아니기를 바람과 동시에 그래도 이번엔 다행히 곧바로 앞길을 비켜줄 수 있었다는 생각에 약간의 뿌듯함을 느꼈다.
평상시 얼마나 뿌듯한 일을 하지 않고 살았으면 겨우 그런 일에서,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매우 위급한 상황일 수도 있는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인지 나의 감정 메커니즘이 부끄럽기도 했다. 고작 이런 걸로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다니 뿌듯함은 순식간에 부끄러움으로 감정의 결을 바꿔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뒤따라오는 구급차를 재빨리 피해 일초의 딜레이 없이 구급차의 이동을 도왔다는 데에서 뿌듯함을 느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고,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이니까.
스스로에게 뿌듯함과 대견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입했는지보다 어떤 종류의 행위를 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하루에 열 시간을 했어도, 매주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했어도 그것이 나에게 어떤 기쁨을 주는 행위가 아니었다면 그 행위는 결코 나에게 뿌듯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런 시간만을 자꾸 쌓아가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증상이 바로 번아웃이다. 그간 해온 일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보람과 기쁨은커녕 고통과 지루함만을 남겨둔 것 같이 공허해지는 상태.
공허함은 위태롭다
속은 허한데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스스로 알 길이 없어 쓸모없는 것들을 내 안에 마구 욱여넣기 때문이다.
나 놀만큼 놀아봤어
왠지 몰랐어 뭣 때문에 열심히 살지
돈을 벌어서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둘러보았어 무엇으로 나를 채울지
먹고 먹어도 왜 계속 배가 고프지
나 놀만큼 놀아봤어, 벌만큼 벌어봤어,
즐길 만큼 즐겨봤어. 결국엔 또 허전했어
언제나 그때뿐이었어
이젠 사랑을 하고 싶어 baby
이런 날 어서 구원해줘 baby
꺼지지 않는 음식으로 나를 배 불려줘
놀만큼 놀아봤어 - 박진영
박진영이 발표한 이 노래는 공허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텅 빈 마음, 그것은 그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는 그의 노래 가사는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박진영만큼 성공한 사람도 결국엔 공허함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의미를 찾지 못한 삶은 결국 공허해지고 그것은 블랙홀처럼 인간의 모든 것을 잡아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고갈의 시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우리는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생활인이자, 각자의 의무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의무인인 까닭이다. 생계와 의무를 위한 시간은 나를 고갈시킨다. 물론 진짜 인생 고수들은 그 안에서도 충전의 에너지를 찾아내는 방법을 터득할 테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 힘들었던 시절을 한 번만 떠올려보면 금세 깨닫게 된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 나를 충전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다만 고갈의 시간을 최소화하고 충전의 시간을 최대화하려 어떻게든 노력은 해봐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충만한 행복의 길로 향하는 첩경이기에, 우리는 의미를 찾고 그곳에서 하루를 충전하며 오늘을 가장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내일이 두렵지 않은 자의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