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자식이 더 잘되길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

콩 심은 데 콩이야 나겠지만

by 정 호
"선생님~ 우리 아빠는 담배 피우면서 자꾸 저한테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해요. 앞뒤가 안 맞다니까요?"

"선생님~ 저는 엄마가 책 읽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저한테는 자꾸 책을 읽으라고 해요. 본인도 못하는 걸 왜 자꾸 시키는지 모르겠어요"


교실에서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불만 리스트가 있다. 바로 "본보기", 혹은 "모델링"에 대한 내용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은 어른들,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부모의 모습을 쏙 빼닮아 있을 때가 많다. 그것은 유전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부모를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모를 본보기로 삼으며 자신의 습관, 생각, 가치관, 생활패턴, 의지 등을 모델링했기 때문이다.

이 본보기와 모델링의 무서운 점은 그렇게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지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냥 내 안으로 스며들어 온다는 점이다. 간혹 태어나길 의지가 강하게 태어나 뼈를 깎는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부모와 닮지 않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기어코 관철시켜내는 돌연변이들이 존재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부모의 외적 내적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고 일반적이다.


특히 아직 성장 중인 아이들에게 부모의 모습은 엄청난 무의식적 모델링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모델링은 결코 언어로 가르칠 수 없다. 아이들의 눈으로 부모의 삶을 목격하는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이 모델링이기 때문에 "담배 피우지 말아라", "책 많이 읽어라"라는 말은 말로써 그 힘을 결코 발휘하지 못한다. 오직 부모의 평소 행동으로만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설 수 있고 마음에 들어선 이후에야 모든 가르침은 효력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끊임없이 말을 통해 본인의 가치관을 전달하려 애쓴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교정하고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고 책을 안 읽던 사람이 책을 읽기는 어렵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결은 습관이 되었고 습관을 바꾸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 모두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가 자식에게 말하는 대부분의 도덕적이고 올바르며 이상적인 삶의 태도들은 부모 역시 갖추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다.


당연하지 않은가,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에 들며 늘 열심히 살고 꾸준히 공부하며 자신이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 같은 존재는 아마도 몹시 찾아보기 힘든 이상적인 인간상일테니까.


비단 이런 예시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자녀에게 건네는 바램들은 대부분 이상적일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부모 역시 그 이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을 때가 많은 것이 당연하다.


두 번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늘 자식이 자신이 밟아온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고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식이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고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단순히 바람으로 그치는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에 그간 살아온 자신의 삶의 관성조차 바꾸어내려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본보기가 되어주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부모는 모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행동으로 완벽을 구현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고 기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렵고 애가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흘러가는대로 어찌저찌 살아왔는데 자녀 앞에서는 그동안 내가 살아온 관성에서 벗어나야 하는 지점이 분명히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자니 당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나에게 왜 그것을 권하느냐고,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당신께서 먼저 본을 보여보라는 요구에 맞닥뜨리게 되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자신을 태워가며 오직 자식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끝없는 아우성을 멈출 수 없는 존재이기에 애가 타들어 간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그렇게 어머니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