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관계성이 보여주는 순수한 마음
아빠: 아들~ 아들은 어떤 아이스크림 좋아해?
아들: 죠. 슈. 바. 아이슈크딤
아빠: 죠스바 아이스크림은 무슨 맛인데?
아들: 파란색 맛 아이슈크딤
아빠: 파란색 맛? 파란색 맛은 무슨 맛이야?
아들: 죠슈바 맛
아빠: 응? 죠스바 맛이 무슨 맛이야?
아들: 파란색 맛.
말이 또래보다 늦게 트여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컸던 만큼 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웃음과 감사함이 넘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맥에도 맞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표현으로 자신의 생각을 서툴게 표현하는 아이의 모습이 단순히 귀엽게만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자기 나름의 생각의 구조를 가지고 무언가를 표현하려 애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대견하고 기특한 마음이 든다.
파란색과 맛이라는 단어는 매칭이 되지 않는다. 파란색은 시각과 매칭되는 단어이며 맛은 미각과 매칭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일부러 문학적인 표현 양식으로 매칭 되지 않는 이질적 단어들을 섞어 쓰기도 하지만 네 살 아이가 문학적 표현을 고려하여 죠스바는 파란색 맛이라고 표현했을 리 만무하다.
아이의 세상 속에 죠스바는 파란색 맛이었고 파란색을 떠올리면 죠스바가 떠올랐을 테다. 죠스바와 파란색은 온전히 일대일 매칭이 되어 다른 것들은 파고들 수 없는 완벽한 한쌍의 결합으로 당분간 아이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머무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그것이 참 순수하고 심지어 대단한 어떤 것처럼 느껴져 억지로 깨뜨려서는 안 될 숭고한 연결고리처럼 여겨진다.
인생은 끊임없는 확장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릴 적엔 사랑이라고 하면 그저 앞뒤 가리지 않고 가슴이 뛰는 것만을 사랑의 범주로 상정하다가도 나이가 들수록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간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개념은 확장되고 또 다른 것들과 연결되며 무한히 뻗어나간다. 그것은 때로는 이롭지만 또 때로는 이롭지 않다.
죠스바와 파란색의 일대일 대응에서 확장되지 않은 완벽히 단절적이며 단일한 개념의 정의를 생각하게 된다. 죠스바는 무조건 파란색 맛이고 파란색 맛은 무조건 죠스바라는 아이의 순진성을 바라보며 두 가지 생각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맛과 색깔에 대해 제대로 된 개념을 정립해주고 싶다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 그 순수한 세상을 조금 더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아이를 기르며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고민의 지점일 테다. 어디서부터 가르칠 것이고 어디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 다만 아이의 그 단순하고 확고한 세상이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