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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Apr 27. 2022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토록 다양한 교육에 대한 정의들

제목 한 번 거창하다. 그래, 너도 나도 쉽게들 이야기하는 교육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실체를 정확히 그려내야만 이 혼란스러움과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덜어질 것만 같다. 누구나 쉽게 입에 올리고 저마다 나름대로 확신에 찬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해 보이는 "교육"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교육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본다.  


교육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과 수단.(네이버 지식백과)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 (표준국어대사전)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교육이며 그 과정을 돕는 수단 또한 교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사전적 정의라고 하기엔 다소 두루뭉술하다.


일단 "모든 것"이라는 말이 그렇다. 어떤 단어에 대한 정의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기에 어떤 정의가 되었건 그 정의는 인간으로 하여 다시금 수백수천 가지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이라는 말에 대해 어떤 사람은 직업적인 차원에서 개념을 정의 내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정신적, 종교적인 차원으로까지 개념을 확장시킬 수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직업 교육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주장할 것이며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종교, 철학, 역사, 문학 등 인간의 정신활동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교육이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처럼 이미 한번 정의 내려진 것에 대해서도 새롭고 다채롭게 정의 내리길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정의에 대한 정의는 끝도 없이 확장된다. 이것이 바로 교육에 대해 합의를 찾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다. 각자가 품고 있는 교육에 대한 생각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고 다채롭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적으로 너의 말도 맞고, 나의 말도 맞다는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생각은 정반합의 건강한 결과물을 도출해 낼 때도 있지만 때로는 대책 없는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에 대한 장삼이사들의 끊임없는 숟가락 얹기를 예로 들 수 있다.   

 

가끔씩 특강이나 연수를 듣는데 연수를 듣다 보면 연수 주제에 따라 교육의 목적은 성형중독에 빠진 사람의 얼굴 변화만큼이나 변화무쌍하게 바뀌어 도대체 내가 교사로서 학교에서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 것인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혼란스러워진다.


글쓰기가 주제인 특강에서는 교육이란 글을 쓰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인데 글 쓰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되느냐며 학교에서 글을 쓰는 시간이 있기는 한 것이냐고 교사들을 몰아세우며 우리나라 교육이 망했다고 교사들을 질책한다. 소프트웨어 연수를 들으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여 컴퓨팅 사고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인데 우리나라 교육은 여전히 19세기에 갇혀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할수록 금융교육이 절실히 필요한데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금융문맹으로 길러내고 있다며 학교와 교사를 한심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매도한다. 다양한 권리들이 강조되며 장애인권, 청소년 인권, 여성인권, 노동인권 등 각종 인간의 권리들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인권 예찬론자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이런 교육들이 학교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규 교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교사들은 세상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각종 주제들을 의무 교육(생존수영, 119 안전체험, 소방훈련, 화재대피훈련, 지진훈련, 보건수업, 성평등 수업, 학교폭력 예방교육, 인권교육 등등 끝도 없다.) 형태로 시행하고 있으며 창의적 체험활동과 교과 수업시간을 활용하여 다양한 계기교육(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특정 주제에 대해 이루어지는 교육을 뜻함)을 빼놓지 않고 교과에 녹여내어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교육에 대해 다채롭게 정의 내리는 행위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 정의에 걸맞은 교육을 직접 수행하거나 그러한 교육과정이 필요한 수요자가 해당 교육과정을 집행할 수 있는 기관 또는 스승을 찾아 충족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다채로운 정의들이 학교로 끊임없이 수렴된다는 데에 있다. 시간적, 물리적, 인적 자원이 한정된 학교라는 단일한 공간 안에 그토록 다양한 교육적 요구들이 너도 나도 서로 내가 더 중요한 것이라며 정수리를 들이밀며 앞다투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바늘과 실, 골무, 자, 인두, 가위 등이 자기가 서로 바느질을 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며 싸워대는 규중칠우 쟁론기가 떠오르기까지 한다. 게다가 가끔씩 교사라는 이유로 일상적인 생활영역 안에서까지 그러한 교육적 요구들에 대해 의견을 듣고 답을 내어주길 기대받는다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다.(feat. 학교에선 이런 거 안 가르치지?)


재미있는 것은 교육의 최전선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교육이란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세상사 복잡하지 않은 일이 없듯 교육 또한 복잡다단한 것이라는 것을 매일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바라보는 교육이 이토록 다를진대 교육이 무엇인지 합의 내리기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목소리 큰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본의 논리에 부합하는 것이, 유행이라는 가벼운 바람에 휩쓸리는 것이 교육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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