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말투와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 아니 대화를 이어간다기보다 마지못해 답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영혼이 없다거나 감정이 느껴지질 않는다고. 한데 그렇게 감정 없이 말하는 사람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을 한번 열고 들여다보자. 우리는 감정을 얼마나 자주 느끼고 적절하게 표출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아~슬프네. 아~불쌍하다. 아~딱하네. 아~부럽다. 아~아름답네. 아~대단하네. 아~ 짜증 난다.
우리는 매일 여러 종류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낸다. 슬픔, 기쁨, 분노, 증오, 질투, 연민, 환희, 경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가슴 깊이 그런 감정들이 느껴져서 감정과 관련된 언어를 꺼낸다기보다 머리로 그런 감정이 들어야 마땅하다고 판단되는 순간에 우리는 감정과 관련된 단어들을 내뱉는 것 같기도 하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짧게 내뱉는 슬픔에 관한 언어들. 슬프다, 안타깝다, 안됐다, 딱하다, 안쓰럽다는 말들. 물론 언어는 감정을 표현하기 가장 수월하고 유용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다만 언어에 감정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말들보다 슬픈 장면에서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젓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참아내는 모습이 오히려 진짜 영혼이 살아있거나 감정을 담은 모습처럼 보인다.
감정은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강력한 파동이다. 슬픔의 감정, 분노의 감정, 애증의 감정, 환희의 감정, 기쁨의 감정을 말로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운 이유는 무어라 명확히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파동이 가슴속에서 넘실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마지못해 그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빈약한 언어일지라도 내 가슴속 감정을 조금이나마 구현해내기 위해 언어의 도움을 받아 풀어놓는 것이 바로 말인 것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마음 상태를 보고 싶다는 말로 어찌 담아낼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말로는 내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없을 만큼 사랑이 넘쳐흐를 때 사랑해라는 말은 얼마나 내 마음 앞에 작고 초라한 형태의 언어로 남아 있는가.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겪고 있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건네는 그 어떤 위로의 말에 내 마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감정을 담아내기에 언어는 너무도 좁다. 그렇기에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순간 언어에 감정을 담아내기 어렵다. 애초에 언어는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닌 탓이다.
감정을 오롯이 느끼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슬퍼 보이기 때문에 슬프다는 말을 뱉는 대신 슬픈 장면을 마주할 때 눈물을 펑펑 흘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화가 나야 되는 상황에서 화가 난다고 말하기보다 달려가서 욕을 내뱉으며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스러운 아이 앞에 서서 예쁘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하는 대신 있는 힘껏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30년 넘게 살아오며 애써 사회화가 되었는가 싶더니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꼴이다. 인간이란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어른이 되었지만 잘 살기 위해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