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늘 그렇게 지치지 말고 살아가렴
아들: 아빠 나랑 나무 쌓기 놀이하자.
아빠: 그럴까? 그럼 아빠랑 같이 높게 높게 쌓아볼까?
아들: 응!
아빠: 그래 그럼 누가 더 높이 쌓을 수 있는지 시합해보자!
아들: 그래 좋아! (집중해서 쌓아 올린 젠가 더미가 잠시 후 와르르르 무너져 내린다. 무너진 젠가를 잠시 동안 멀뚱히 바라보다가)
아빠: 어쩌지 열심히 만든 나무 탑이 무너져 버렸는데?
아들: 그래도 괜찮아, 다시 하면 되잖아.
젠가는 필연적으로 무너져 내려야지만 끝나는 게임이다. 무너뜨림의 주체는 내가 될 수도, 네가 될 수도 있다. 누가 그 마지막 붕괴의 순간에 손을 가져다 댈지는 무너지기 직전의 순간까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은 결코 피할 수 없으며 그것은 곧 패배 혹은 실패를 가져온다는 것.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열심히 나무더미를 쌓아 올리다가 와르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면 아이는 금세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실패나 패배와 같은 승패의 룰에 아직 익숙해지기 전이었던지라 그 울음의 원인은 패배의 분함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본인이 무언가 집중해서 공들여 만들어내던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현장을 바로 자신의 두 눈으로 직면하는 일이 갓 세돌을 지난 아이에겐 아직 버거운 일이었으리라.
그렇게 반복되는 쌓아 올림과 무너뜨림의 과정 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너의 웃음을 보기 위해 일부러 젠가를 무너뜨리는 아빠의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까르르르 자지러지는 웃음을 짓는 너는 그 순간 기쁨과 승리의 즐거움을 맛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기어코 너를 이기고야 말겠다고 집중하는 아빠를 마주하며 너는 그 순간 서운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게임을 이어가다 결국 아빠에게 져버리고 난 다음 입술을 씰룩거리며 으앙 하고 터져버린 너의 울음 속에는 패배의 쓰디쓴 열패감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럽기도 하다.
그렇게 이길 때면 까르르르 자지러질 듯이 웃고, 질 때면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울기만 하던 아이가 어느 날 새로운 반응을 보인다. 이겨도 그저 씩 한번 웃어주고 또 다른 놀잇감을 찾아 떠나고, 질 때면 괜찮다며 다시 하면 된다는 말로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른다.
매 순간 놀랍고 경이롭다.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을 이렇게 압축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 시절이 아이의 어린 시절 말고 또 있으랴. 이는 인간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들기까지 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들이 더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변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노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순간. 아이는 그래서 늘 기적적이며 예외적이고 모든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존재다.
승패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그렇게 늘 다시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승리의 달콤함에 취해 오만방자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패배의 열패감에 휩싸여 적개심에 허송세월 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오늘처럼 덤덤하게 "괜찮아, 다시 하면 되잖아"라며 훌훌 털고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게 너의 나무를 하나하나 심고 가꾸며 쌓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기쁘고 흐뭇한 마음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