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불에 건너도 차에 치일 수 있다는 건
아들: 유튜브 딱 하나만 더 보여주세요.(귀여운 표정)
아빠: 처음에 3개만 보기로 약속했는데~
아들: 딱 하나만 더 볼게요.(뾰로통한 표정)
아빠: 약속은 지켜야 되는 거야.
아들: 약속은 안 지키는 거야.(화가 난 표정)
아빠: 약속은 사람들이 같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규칙이야. 규칙은 지켜야 돼.
아들: 규칙은 안 지키는 거야.
아빠: 아들은 신호등 무슨 불에 건너지?
아들: 초록불.
아빠: 그렇지? 그런 게 규칙이야.
아들: 아니야 빨간불에 건널 거야.
아빠: 조금 전에 초록불에 건넌다고 했는데?
아들: 규칙을 안 지킬 거야.
아빠: 사람들은 규칙을 지키면서 사는 거야.
아들: 아빠는 초록불에 건넜는데 차가 빵 치고 지나갔어.
아빠:....?!
스무 살 무렵 교통사고를 당했다. 초록불에 신호등을 건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주 운전에 과속을 하는 차량을 제때에 발견해내지 못한 탓에 사고를 당했다. 여전히 남아있는 흉터와 수술 자국들은 그날의 기억과 당시 병원 생활이 잊히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빠 이건 뭐야?" 아이와 목욕을 할 때 아이는 상처를 가리키며 묻는다. 그럴 때면 안전교육의 일환으로 신호등은 초록불에 건너야 하는 것이며, 꼭 좌우를 살펴야 하고, 초록불일지라도 차가 올 때는 반드시 멈춰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곤 했다.
아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헉하고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 아이의 질문에 나의 말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음을 발견했다거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거나 하는 이유에서다. 그 순간 역시 그런 종류의 시간이었다.
아빠는 초록불에 건넜는데
차가 빵 하고 부딪혔어
그것은 질책이었을까. 초록불이었어도 좌우를 잘 살피고 건넜어야지. 초록불이었어도 차가 올 때는 일단 멈췄어야지. 진짜 초록불에 건넌 것은 맞아? 아빠는 나한테 가르쳐준 대로 하지 않아서 다치고 말았네? 그러면서 나에게 그것을 가르칠 자격이 있어? 물론 아이가 그런 생각과 의도로 물어온 것은 전혀 아니었을 테지만 가르쳐준 대로 살지 못해 기어코 몸에 남기고야 만 상처 자국은 가르쳐준 대로 본을 보이지 못하며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까지 가 닿아 아이의 작은 질문 하나에도 제대로 대답하기 힘들도록 만든다.
본보기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도 서글픈 일이지만 그보다 더욱 걱정되는 일은 괜히 무언가를 가르쳐주려 했다가 세상에 대해 그릇된 믿음을 심어주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다. 아빠는 분명히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는데, 초록불에 건너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기 위한 규칙이라고 했는데, 모두가 규칙을 지키면 어디에도 불행의 흔적 따위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야 할 텐데, 왜 규칙을 지켜도 아빠는 사고가 났을까. 어딘가에는 그것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리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초록불에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났다는 것은 아이의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록불은 안전한 것이고 그렇게만 한다면 아무런 일 없이 횡단보도의 끝에 가 닿아 험난한 차도를 무사히 건널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 그것은 곧 선하고 올바른 동기와 행동은 선하고 올바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믿음과 같다.
그랬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세상 일이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초록불에 신호등을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버린 아빠를 통해 이제 고작 네 살 아이가 깨달아버린 것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선한 의도가 늘 선한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늘 선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다른 모든 이유를 떠나 그것이 나의 고통을 줄여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혹여나 운이 좋다면 행복 비슷한 감정에 가 닿을 수도 있다. 선이 선을 불러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하여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선의 이면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 바로 이탈의 시초가 된다.
과학의 법칙과 인생의 법칙은 맞닿아 있다. 관성의 법칙 역시 삶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정도를 걷는 사람은 끝까지 정도를 걸어갈 확률이 높으며 한번 삐딱선을 타기 시작하면 어긋나 버린 기울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져가기 마련이다.
초록불에 건넜어도 차에 치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평생 담배를 멀리하며 살았어도 폐암에 걸릴 수 있는 것이 인생이고 일생동안 근검절약하며 살았어도 가족의 도박빚에 집이 바스러질 수 있는 것 역시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킬 것은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성과라는 망령의 재촉에 허우적대며 요령에 기대기보다는 한 방울씩 차곡차곡 흘러내리는 정직한 땀방울의 힘을 믿는 사람이 되기를, 허무보다 희망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