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렇게 짜증이 많은 사람은 아니야

애틋한 사모곡

by 정 호
아들: 짜요짜요 먹고 싶다.

아빠: 안 돼. 벌써 두 개나 먹었다.

아들: 딱 하나만 더 먹을게

아빠: 안 돼. 이제 곧 저녁 먹어야 돼

아들: 그럼 엄마한테 허락받고 먹어도 돼?

아빠: 엄마가 허락 안 할걸? 지금 너 그거 두 개 먹은 것도 엄마가 알면 짜증 낼 걸

아들: (5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엄마가 그렇게 짜증이 많은 사람은 아니야


아이와 함께 시간당 얼마를 지불하면 레고를 마음껏 조립할 수 있는 놀이방에 가기로 했다. 이것을 위해 주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아이는 폴짝거리기까지 하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가는 길에 너무 흥에 겨웠는지 평소에 잘 먹지도 않던 군것질거리를 하나 사서 들어가자며 귀여운 애교를 부린다. 그래 이 애교를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볼 수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와 마트에 들러 짜요짜요 한 상자를 사서 들어간다. 레고 놀이방에 도착하자마자 짜요짜요 두 개를 마시듯이 비워내고 아이는 레고 조립에 열중한다. 세 시간 정도 몰입의 시간이 끝난 뒤 아이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는 잊고 있던 간식거리가 불현듯 생각났는지 짜요짜요를 더 먹고 싶다며 앙탈을 부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이제 저녁식사 시간이 가까워진 터라, 게다가 집을 나설 때 아내가 했던 "간식 먹이지 말라"는 말이 떠올라 간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의 입에 하나라도 더 넣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아내는 나보다 아이의 식사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이라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는 날이면 본인의 감정에까지 영향을 받는다. 그런 모습이 때로는 이해되지 않아서 왜 저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가 싶다가도, 엄마라서 그런가 보다, 나보다 아이의 건강에 더 신경을 써서 그런가 보다 하고 못 본 체 넘기고는 한다.


계속 짜요짜요를 달라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였는지 아이에게 다소 거친 말투로 문장을 내뱉고 말았다.


"엄마가 허락 안 할걸? 너 지금 두 개 먹은 것도 엄마가 알면 짜증 낼 걸?"


조용해진 아이를 바라보며 더 이상 떼쓰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건가 싶어 '이제 됐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아이의 이어지는 말에 나는 그만 어딘가로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엄마가 그렇게 짜증이 많은 사람은 아니야"


아이답지 않게 낮고 느린 어조로 단호하게 말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마치 혼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웠고, 미안했고, 대견하고, 소중했다. 이도 알고 있는 엄마의 본성을 왜곡하여 인식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그런 못난 마음을 아이 앞에서 드러냈다는 것에 미안했다. 아빠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자신이 바라보는 엄마에 대한 "상"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했고 그 마음이 소중했다.


"그래 맞아 엄마가 그렇게 짜증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


아이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라도 하듯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가 그렇게 짜증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생각 없이 뱉어버린 나의 한마디 말 때문에 아이의 머릿속에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상이 그려질까 봐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