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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얼빈

우리는 어떤 이를 영웅이라고 부르는가

by 정 호
"어? 하얼빈? 선생님 이거 옛날 책이에요?"

"옛날 책이냐고? 이거 출판된 지 얼마 안 된 책인데"

"아니 옛날 시대를 다룬 책이냐고요. 하얼빈 그거잖아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권총으로 쏜 곳"

"이야 그런 것도 알아?"

"네 책에서 봤어요."


지나가던 6학년 학생이 책상 위에 올려둔 책을 보더니 먼저 말을 건다. 그 녀석의 머릿속에도 하얼빈이라는 장소는 안중근과 연결되어 있던 모양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지나간 역사를 되짚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가 어디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톺아보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앎은 때로는 몹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역사와 관련된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읽어도 유독 다른 분야의 책들보다 기억에 오래 남지 않고 휘발되어버려 들인 공에 비해 남는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란 머리를 탓할지언정 알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될 이유는 현재의 삶과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 소설이기에 어디까지가 실제 있었던 일이고 어느 부분에 소설적 요소가 가미된 것인지 구분 짓기 어려웠다. 바로 이점이 역사 소설의 장단점일 테다.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기에 역사를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과 동시에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정확히 알지 못해 잘못된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둘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그 둘을 동시에 껴안고 책을 읽어 내려간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이라는 영웅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는 역사적 사건에 초점을 두기보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까지, 그리고 죽이고 난 뒤 자신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의 시간 동안 인간 안중근이 겪었을 여러 상황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던 것 같다. 그중에도 특히 거사를 도모하기 위해 안중근과 우덕순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 둘은 특별한 대화를 일절 나누지 않는다. 그 어떤 정치적 대의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오직 "이토를 죽일 것이다"라는 한마디에 둘은 그 순간 이후 목숨을 건 동지가 된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면서 순식간에 하나가 되는 경험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음을 읽어주는 한마디의 말에, 알듯 말듯 홀리는 듯한 미소에, 나만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어떤 것을 알고 있는 상대방과 마주했을 때,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물며 알뜰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그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 순식간에 빠져드는 사랑만이 이 세상에서 타인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나라는 한 개인을 챙기기보다 더 커다란 어떤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대한독립이나 동양평화와 같은 거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간에는 사랑이 아니어도 눈빛과 한두 마디의 말만으로, 서로의 생각과 목적을 확인하는 순간 그야말로 목숨을 건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애국이란 무엇인가. 국가에 대한 사랑, 그 역시 결국 사랑이다. 형태와 대상이 다를 뿐, 사랑은 가장 위대한 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 어떤 힘임에는 틀림없다.


<기억에 남는 장면 1.>

안중근: 자네는 권총이 있는가.
우덕순: 있다. 광산촌에서 행상질 할 때 호신용으로 사둔 것이다.
안중근: 총알은 몇 발 있는가.
우덕순: 처음에 열 발 있었는데, 일곱 발로 꿩을 쏘고 세 발 남았다.
안중근: 꿩을 쏘고 남은 총알로 이토를 쏘는구나.
우덕순이 소리 없이 웃었다.
- 115p -


삶이란 그런 것. 어느 것이 어느 때에 쓰일지 예측할 수 없다. 호신용으로 사둔 총으로 꿩을 잡게 될 줄은, 꿩을 쏘고 남은 총알이 이토를 저격하게 될 줄을 우덕순은 상상이나 했을까. 연결에 연결을 거듭하며 우덕순은 이토 앞에 서게 된다. 지금껏 삶을 살아오며 덧대 온 자그마한 연결 하나만 바뀌어도 우덕순은 결코 이토 앞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작고 우연한 마주침들, 타고 난 상황 속에서도 내가 고를 수 있는 작은 선택들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렇게 안중근과 우덕순은 이토 앞에 도달하는 삶을 선택해왔던 것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 2.>

우덕순은 안중근과 두어 번 만난 적은 있었지만 흉금이 통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성장 과정이나 세습된 환경이 전혀 달랐다. 불온한 떠돌이라는 점은 같았지만 우덕순은 극빈의 하층민이었고 안중근은 토호의 자식이었다. 안중근은 한학의 기초를 갖추었고 무골의 기상이 있었다. 우덕순은 이토를 죽이러 가자는 안중근의 제안에 즉석에서 동의하고 이틀 뒤 둘이서 열차를 타고 블러디보스토크로 떠났다. 이토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둘이서 말하지도 않았다. 둘 사이에 정치적 대화는 없었다. 이 과정은 우덕순의 진술과 안중근의 진술이 일치했다. 이 두 사내들 사이에 어떤 신통력이 작동해서 이런 행동이 가능했던 것인지 미조부치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이 두 사람만의 일인가. 아니면 다른 조선인들에게까지 확산될 수 있는 일인가를 미조부치는 우덕순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 212p -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두 인물이 어떠한 대화나 합의도 없이 어떤 신통력 때문에 합심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러 나서는 과정. 이것이 하얼빈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화두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같은 목적을 이뤄내고자 하는 어떤 신통한 능력, 이것은 그 둘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특이성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보편적인 성질을 띈 민족성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전국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소요사태는 미조부치의 이런 의구심에 불을 질렀을 것이 분명하다. 그 어떤 명령체계나 우두머리의 지휘도 없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의병활동들 역시 나라를 생각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져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 말고는 그 뚜렷한 발생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


주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주류를 선택하는 일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의병활동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고 한들, 전체 국민의 수에 비해 그러한 전투, 첩보활동을 비롯한 국권 회복을 위한 어떤 활동들을 몸소 수행해내는 사람은 극소수였을 테다. 더군다나 안중근처럼 토호의 집안에서 태어나 당시 시대적 상황 안에서 주류가 될 수 있었던 집안에 속해있는 신분으로 굳이 독립운동처럼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어려운 선택을 해낸 사람들을 기꺼이 영웅이라고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난 몰랐지, 독립이 될 줄 내가 알았으면 그랬겠어"라는 영화 암살 속 이정재의 대사는 그래서 외면하고 싶어 진다. 내가 만약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으리라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날이 어찌 될 줄 몰랐기에, 게다가 그 앞날이 어둠으로 가득 차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우리는 과연 내 한 몸의 안위를 먼저 생각할 것인가 대의를 생각할 것인가.


대세를 거스르는 일, 주류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렵다. 더욱이 대세나 주류에 편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하기는 더욱 어렵다. 게다가 가족과 친지들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게까지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안중근은 그 모든 것을 감당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위대한 영웅이라 부르는데 망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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