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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소중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by 정 호

책의 저자 이유진 씨는 아토피 환자다. 책을 읽어보니 그 증세도 가볍지 않은 듯해 보인다. 가볍지 않다기보다 차라리 중증에 속한다. 본인이 아토피 환자이기에 신체라는 범주에 있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나이는 고작 10살 무렵이다. 삶의 무게를 깨닫게 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 계기가 자신의 몸이라는 점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극복이 어렵고, 어쩌면 평생 동안 들러붙어서 나를 괴롭힐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 막연하다기보다 어느 정도 확실한 불안이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질환이 그러하듯 아토피 역시 경증부터 중증까지 그 증상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저자는 가벼운 정도의 아토피 증상을 가진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읽어가고 있노라면 가려움을 넘어선 고통스러움이 전해진다. 가려워서 차라리 통증이 낫겠다 싶어 자신의 얼굴을 때리다가 실명을 한 사람을 보고 공감을 한다는 저자의 말과 그 마음은 몹시도 무겁다. 같은 증상을 경험해보지 못해 고스란히 그녀의 고통이 전해진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녀의 괴로움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공감이 되는 이유는 나 역시 다한증이라는 질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계, 면역계통 질환은 부러지거나 찢기는 형태처럼 손상의 부위가 겉으로 드러나 있는 외상을 치료하는 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아토피, 비염, 알레르기, 다한증, CRPS와 같은 면역, 신경계통 질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손상된 탓에 발생하는 질병이기 때문에 명확한 원인을 찾아내기 어려울뿐더러 치료를 위해 하나를 손대면 다른 시스템이 고장 나는 식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원인 파악 자체가 어렵고 완치가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와 비슷한 나이 즈음에 나 역시 다한증이라는 질병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남들과 다른 것이며 앞으로 이 질환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친구들과 피구, 배구, 농구와 같이 손을 사용하는 운동을 할 때, 땀이 나는 손에 마찰력이 부족해 자꾸만 미끄러지는 공을 붙잡아두기 위해 손가락 끝에는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경직된 몸은 공놀이 본연에 집중하기보다 그저 공을 놓치지 않는 것에 몰입하게 만들어 기술 연마나 즐거움에 몰입하기보다는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우선하게 만든다. 결국 그것을 원인으로 구기 종목을 좋아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저자의 말처럼 외출하는 것조차 용기를 내야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다한증 때문에 남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는 때가 참 많았다. 나는 수족 다한증이라서 안면 다한증이나 흉부, 겨드랑이 다한증을 가진 사람들에 비하면 겉으로 흐르는 땀을 어느 정도 숨길 수 있는 편에 속한다. 수족 다한증은 명칭 그대로 손과 발에 땀이 흐르는 증상을 보인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흐르는 물에 손을 씻은 뒤 살짝 털어낸 상태를 늘 유지하고 있다고 보면 될 정도의 수분감을 늘 유지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던 대학시절, 앉을자리가 없어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손바닥에서 손목을 지나 팔꿈치로 흐르는 땀방울을 남들이 알아채기 전에 서둘러 닦아내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그 외에도 땀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넘쳐나지만 그와 관련된 내용은 아래 글을 첨부하도록 하고 여기에서는 이만 줄이도록 한다.


https://brunch.co.kr/@scentoflife/41



만나는 사람마다 아토피 박사를 자처하며 나를 구원해주고 싶어 안달이다 - 25p


아토피 환자보다 아토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가장 자세하고 가장 방대한 정보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언제나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을 앞에 두고 채식을 해보라느니 생식을 해보라느니 맑은 공기를 마시라느니 하는 말들을 내뱉는 사람들은 얼마나 우스운 사람들인가. 그에 더해 기도가 부족해서라는 말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 당사자의 답답함은 차마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고 역겨운 일이다. 대체 왜 그렇게 무심한 사람이 많은 것일까.


자율신경 혹은 자가면역질환은 신경 혹은 면역계통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해 발생하는 질병이다. 말 그대로 어딘가 시스템이 고장 나서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걱정이 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나 역시 내 손바닥에 고여있는 땀을 바라보며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아서 그렇다. 운동을 해야 낫는다. 몸이 허약해 그렇다는 식의 논리와 배려 모두가 부족한 말들을 무수히 들어온 입장인터라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런데 처음 약속한 다섯 번의 상담을 다 마칠 때쯤에야 바로 내 앞 테이블 위에 놓인 시계가 보였다. 놀랍게도 시계는 처음 내가 상담을 시작할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조명도 평범한 밝기였다. 조명이 바뀐 게 아니라 나의 시각이 제 기능을 찾은 것이었다. 내 무의식에 불을 밝히기 시작하자 제자리에 있던 모든 것이 원래의 모습대로 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고 어딘가 고장 나 보이던 것들이 하나씩 제대로 보일 때마다 어쩌면, 어쩌면... 이상하고 어딘가 고장 난 나도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68p


일주일에 한 번씩 듣고 있는 철학 수업의 선생님께서 불교의 '진여'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있다. 진여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음을 뜻한다. 진여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해 인간의 모든 오해와 불행은 시작된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진여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을까. 선생님께서는 그것이 인간이 너무도 강한 "자아"에 갇혀 지내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인간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의식 수준으로 "무아지경" 즉 내가 사라지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세월을 스쳐 보내며 점점 더 강해지는 자아를 갖게 된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의식 과잉을 가져온다. 그래서 경험이 많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기가 어려워진다. 살아오며 축적된 데이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다 저자와 같은 우울증 환자인 셈이다. 제자리에 있는 모든 것들의 원래 모습은 알아보지 못한 채 내 인식에 갇혀, 내 경험에 갇혀, 협소한 개인적 세계관에 비추어 모든 것을 이상하고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바라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책이나 영화 같은 작품들의 결말이 대부분 해피엔딩인 이유는 인간은 결국 희망을 갈구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존재인 탓이다. 하지만 저자는 생생한 삶을 전하고 싶어 했다. 아토피를 완전 정복했다거나 치유했다는 식의 희망찬 이야기보다 그저 아토피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겪어온 여러 불편했던 감정과 고통스러웠던 상황들을 이야기한다.


세상 어딘가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알고 있다. 본인이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 또한 그런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아토피를 치유하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우울증까지 함께 앓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현재 바라보고 있는 기쁨들이 있다고, 고통 역시 삶의 일부이며 끌어안고 가야 하는 숙명이라고, 그렇게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 오히려 삶을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그렇게 저자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또 다른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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