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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08. 2020

비 오는 날엔 파전?

앵커링일까 이벤트일까

비 오는 날은 파전이지


 누구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인지 알 수 없는 이 문장은, 일말의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포유류다"라는 말처럼 과학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삼단 논법의 문장 구조가 가지고 있는 견고한 논리의 전개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일말의 틈을 허용치 않는 치밀한 논리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것이 누구의 입을 통해 최초로 세상에 나오게 된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엔 이처럼 그것의 기원을 찾을 수는 없지만 마치 보편적인 진리처럼 통용되는 어떤 절대성을 획득하고 있는 말들이 있다.


 치킨엔 맥주라는 말은 치킨을 먹을 때 맥주가 아닌 소주나 와인을 마시는 사람을 맛과 멋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소고기는 핏기만 가시면 먹어야 된다는 말 또한 소고기를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기의 두께와 부위에 따라, 때로는 썰려있는 방식에 따라 굽기를 다양하게 하면 부드럽게도 먹을 수 있고 육즙을 느끼며 고소하게 즐길 수도 있고 고기의 찰진 식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텐데 오직 핏기가 가신 소고기를 흡입하느라 다양한 맛의 재미를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앵커링


 앵커(anchor)는 닻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이다. 닻은 배를 항구에 정박시킬 때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게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앵커링이란 이에서 파생된 심리학적 용어로 어떤 기준을 제시하면 그 기준에 얽매여 제시된 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다른 말로는 프레이밍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앞에서 예로 든 치킨과 소고기처럼 특정한 루틴을 가지고 우리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앵커링을 당해서 미리 주어진 생각의 틀에 갇혀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지 못했던 적은 또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앵커링은 비즈니스에서 많이 사용한다.

우리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앵커링의 사례로 할인 판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만 원에 x를 강력하게 표시해두고 5천 원이라고 적으면 우리는 그것을 당장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것이 정녕 1만 원의 가치를 가진 물건인지 아닌지는 판단의 기준에서 사라져 버리고 50퍼센트의 할인율만이 머릿속에 각인되는 것이다.  


 대형 마트의 가전매장 코너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매장의 입구 쪽에는 한결같이 가장 크고 비싼 대형 TV를 전시해둔다. 천만 원이 넘는 TV의 멋들어진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매장 안에 있는 일이백만 원의 TV는 저렴해 보이는 마법이 펼쳐진다. 천만 원에 앵커링 되어버린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다 파전을 떠올리면서 시작된 오늘의 글쓰기는 이런 앵커링을 유발하는 형태의 말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결함이나 논리적 허점을 들춰내고자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말들을 되새김으로써 우리는 이벤트에 노출된다. 비 오는 날이면 파전을 해 먹어야 할 것 같고, 이승철의 서쪽 하늘을 흥얼거리게 된다. 빼빼로 데이를 비롯한 각종 데이가 되면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기 위해 기꺼이 의미 없다고 판단되는 소비를 감행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대기업의 상술이며 거대 자본에 종속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항상 그렇듯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 내가 바로 서 있지 못하다면 세상 무엇인들 나를 흔들어내지 못할까.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될 일이다.

 

 다양한 루틴을 즐기고 그것을 다양한 이벤트로 받아들인다면 삶을 더욱 다채롭고 재미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이벤트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벤트로 느껴지는 일들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모든 사건이 이벤트로 다가온다. 온통 새로운 것 신기한 것들 투성이라서 하루하루가 별나라에 온 것만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이 없다. 먹어봤고 입어봤고 가봤고 해 봤다. 일상이 일상적인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을 때 지루함은 찾아오고 그때 사람은 스스로를 늙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것들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일상은 이벤트다. 어린 시절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눈이 반짝거리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가슴 뛰는 무언가를 좇아가며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살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며 누군가는 어린왕자라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비웃음을 좀 사더라도 빛나는 눈동자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만사 득도한 듯 공허하고 초점 없는 눈빛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매력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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