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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26. 2022

우리가 서로를 늘 선배로 바라볼 수 있다면

따듯한 어른들의 아지트

글쓰기를 배우러
한 달에 한 번씩 대구에 간다.


내가 사는 곳과 꽤 거리가 먼 그곳을 알게 된 것은 SNS를 통해서였다. 글쓰기, 책 쓰기와 관련된 영상과 계정들을 며칠 살펴보았더니 귀신같이 글쓰기 책 쓰기 특강과 관련된 광고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살펴보던 중 월 1회 오프라인 모임과 1년 간의 수업이 끝나면 공동저자로 책을 한 권 출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커리큘럼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손가락은 이미 수강 신청을 클릭하고 있었다.


사실 이미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운영하는 카톡방에도 들어가 있고, 자신의 책을 수십 권 출판한 것으로도 모자라 일반인들의 출판을 도와 출판업계에서 잔뼈가 굵다 못해 자신의 입김이면 출판사조차 꼼짝할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특강도 들어봤다. 책을 내고 싶다는 열망은 그렇게 유명하다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플랫폼으로 나의 발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끝에 가서는 엄청난 돈을 요구하는 책 쓰기 강사들의 커리큘럼에 슬슬 지칠 대로 지쳐있던 터에 부족하더라도 혼자 힘으로 출판사의 문을 두들겨보기로 결심을 했더랬다. 그렇게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며 투고와 출판 전반에 걸친 자료들을 찾아보며 어렵사리 출판 계획서라는 것을 작성했고 지난 8월, 출판사 50여 곳에 출판 계획서를 투고했다.


두 달이 지난 현재 계약을 하고 싶다고 답변이 온 곳은 한 곳도 없다. 거절 이메일 매뉴얼이라도 있다는 듯 천편일률적인 답변이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앞다투어 나에게로 던져졌다. 출판사가 내 글을 볼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출판사들의 비슷한 거절 이메일을 하나씩 읽으며 출판사의 입장에 급격하게 공감이 됐다. 내 글도 출판사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다른 글들과 구별되는 특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렇고 그런 글.   


그렇게 약간 맥이 빠져있던 찰나에 우연히 알게 된 대구의 한 글쓰기 공간은 왜인지 모르게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글쎄 이유를 생각해봐도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저 마지막 심정이라는 느낌으로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도전을 했던 것일까. 일 년 뒤 공동저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대형 출판사가 아닌 1인 출판사의 어떤 매혹적인 지점이 있었던 것일까. 글쓰기 커리큘럼을 배워 교실에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글쎄 나도 명확히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발을 담근 글쓰기 공간에서 그곳의 호스트이자 글쓰기 강사인 선생님은 수강생들끼리 서로를 선배님이라 부르자는 제안을 한다. 선배님?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정하는 모임이 있었던가. 하긴 얼마 전에 들었던 교육청 글쓰기 연수에서 우리 팀을 이끌었던 한 작가님께서는 서로의 이름 대신 필명을 정해 모임이 운영되는 동안 서로를 필명으로 부르자고 했었다. 필명을 통해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조금 더 명확히 할 수도 있고, 미리 작가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불려보는 어떤 경험, 혹은 내가 아닌 익명의 누군가가 되어 보다 솔직한 글을 써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등. 필명으로 서로를 부름으로 인해 얻어지는 효과가 적지 않았기에 작가님의 제안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로를 선배님이라고 부르자니, 이건 또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 것인가.


나이를 떠나 인생이라는 플랫폼 안에서 우리는 어느 분야에서건 서로가 서로에게 선배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글을 쓰는 이 공간 안에서만큼은 서로를 선배로 존중해주자는 설명에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시각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선배가 되어주는 경험은 새롭고 신선했다. 선배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홀로 돌아봐야 할 일일 테지만 스스로 선배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수업에 진심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얼마 전에 이전 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교사가 책을 한 권 선물해주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제목의 따스해 보이는 책이었는데 힐링스러운 표지와 제목과는 달리 온갖 연구를 기반으로 한 과학기반 인문학 책이라는 점이 혼란스러웠지만 제목 하나만큼은 인상적이었다. 아직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책의 제목을 통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장에 분명히 동의한다. 다정한 것들, 다정한 사람들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따스함은 그 자체로 사람을 녹아내리게 하고 녹아내린 부분들은 촛농의 그것처럼 서로 얽혀 금세 끈끈하고 단단한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형성한다. 비록 처음에 가졌던 모양과는 달라졌을지언정 그것은 분명 단단함을 보존한다.


우리가 서로를 늘 선배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기와 다툼과 분쟁과 분노는 결코 발을 붙일 수 없는 따스함의 땅. 그곳은 아마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다만 아이들에게 비밀 아지트가 필요하듯 어른들에게도 따스함의 땅은 필요하다. 그곳은 회복의 공간이자 생성의 토양이며 내가 세상에게 베풀 수 있는 힘을 길러줄 수 있는 든든한 아군인 탓이다. 어른들에게도 그런 공간 하나쯤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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