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서평보다는 기행문에 가까운 느낌이 들 것 같다. 책을 읽은 후, 책에 관하여 쓴 글이 아니라 책을 읽기 전, 책과 관련된 사람과 상황들을 마주하며 느낀 견문에 관한 글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의 저자 황진규 선생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름만 들으면 우리나라 국민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다니다가 불현듯 삶에 회의감을 느낀 뒤 철학 공부를 시작했고 그 뒤로 철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어느 지인의 추천으로 우연히 그의 특강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1년 반이 넘도록 줌을 통해 그의 수업을 들었다. 가장 최근에 들었던 수업은 총 17주 차로 계획되었는데 그 내용은 이 책을 바탕으로 구성된 수업이었다. 그렇게 수업을 듣던 와중, 한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팬심이 뒤섞인 마음으로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철학은 돈 버는데 도움이 되나요? 다름은 왜 불편할까요? 왜 무기력해질까요? 피해의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처럼 매주 수업의 주제가 사는 동안 한 번쯤 스스로에게 던져본 질문에 대해 철학자의 개념을 활용하여 답을 내어주는 방식이라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수업을 듣고 나면 개운함보다 오히려 부담감과 막막함이 더 커지는 수업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지행합일, 언행일치 때문이었다.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온 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저자, 그리고 그와 함께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근거리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제자이자 동료들은 정말이지 배운 대로 살아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는 대로 행하고 배운 대로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왜 모르겠느냐만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화면을 뚫고 그 삶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져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자꾸만 반성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지, 변덕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복되는 삶을 지겨워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철학자의 개념과 선생님의 해석을 통해 머리로는 알아듣겠는데 어떻게 그렇게 살아낼 수 있는지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그런 삶을 가꿔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잘 살아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나 때때로 서로를 채근하며 잘못 살아가고 있음을 꾸중하는 순간들을 지켜볼 수 있는 것 또한 귀한 경험이 되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우리는 대체로 떠도는 이야기들을 입에서 입으로 옮겨대느라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를 주고받을 시간이 없다. 온전한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고 그것을 전심으로 귀 기울여 들여주며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보태어 건네주는 상황, 그리고 그것이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연례행사가 아니라 일상을 두툼하게 두른 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다는 느낌.
그런 분위기와 사람들이 좋아 보였으나 물리적 거리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2년이 다돼가는 시간 동안 직접 대면한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그래서 혼자서 생성한 내적 친밀감은 이미 친한 친구들과 버금갈 정도로 쌓여 있지만 그것을 분출하고 나누며 서로 켜켜이 포개어갈 기회를 자주 만들어내지 못한 점이 아쉽기만 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 사람이 아닌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물리적 거리의 한계라는 것을 새삼스레 체감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10대에도 20대에도 품었던 뿌리 깊은 궁금증은 3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방향을 향해 뻗어있다. 10대와 20대에는 그에 대한 답을 명확히 그리지 못한 채 그저 "급급"하고 "불안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30대가 된 지금에 와서야 그 "급급함"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도 같지만 "불안함"은 여전히 날을 세운 채 나를 몰아세우고 있다.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조금 더 지근거리에 있었다면 불안하지 않았을까. 아니 이 또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만큼 실체가 없는 불안은 만성적으로 삶에 침투해 있다.
언제까지 수업을 듣게 될지, 얇디얇은 인연의 끈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만남의 기회가 주어졌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그런 식의 삶의 형태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디엔가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존한다는 것을 두 눈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소중한 만남들로 조금씩 주변을 채워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지만 분명한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