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끝을 분명하게 마주하는 자의 두려움
어머니는 이젠 글마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편지의 글들은 마치 전혀 다른 여자가 써놓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이 편지를 쓴 것은 바로 한 달 전의 일이었다. - 15p
어머니가 돌아가실까 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 17p
내가 열여덟 살 때 지녔던 어머니에 대한 그 엄청난 사랑을 기억한다. 어머니는 내게 있어 절대적인 은신처의 상징이었고 나는 어머니에게 한없는 사랑을 요구하는 병적인 기아증 환자였다. - 111p
내 인생의 처음과 끝, 즉 삶과 죽음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는 내가 가진 것이라곤 치매에 걸린 어머니 외엔 이제 아무것도 없다. - 129p
별안간 내게 "그럼 보름 후에 결혼하는 거냐?"라고 물었다. 그런데 나는 내일 이혼을 요청하러 여변호사를 만나볼 예정이다. -20p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 31p
어머니와 나, 우리는 서로 실제적인 거리감을 느끼지 않았고 언제나 일체감 속에서 살았는데...- 42p
어머니는 내가 과자를 빼앗아갈까 봐 과자 봉지를 손가락으로 힘 있게 꽉 움켜잡고 있었다. 어머니가 어린아이로 뒤바뀐 모든 행동을 보일 때마다 난 두렵기만 하다. - 119p
어머니는 온몸에 힘을 주어 뻣뻣하게 굳어지는가 싶더니 앉은자리에서 일어나려 애를 썼다. 어머니는 용변을 본 것이다. 참담한 마음에 온몸의 힘이 쫙 빠져버린다. 무기력감 그 자체였다. 어머니는 오므리고 있던 오른손으로 거칠게 나를 확 붙잡는다. 손가락을 통해 느껴지는 힘 역시 갓난아기처럼 연약하다. - 141p
다른 어떤 고통들보다 바로 이런 어머니의 몸짓, 그리고 허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또 다른 온갖 몸짓을 보고 있을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 -142p
어머니는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저녁 식사하러 식당으로 가버렸다. 식당으로 들어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저 모습이 내 것이로구나, 내가 바로 그녀라는 생각이 여지없이 밀착되어왔다. 어머니가 이렇게 생을 끝맺음한다고 생각하니 통렬한 고통이 밀려든다. - 21p
집에 남아 있던 어머니의 옷가지들을 가톨릭 구호품으로 내놓거나 퐁투아즈의 벼룩시장에 내다 팔 작정이다.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죄의식이 든다. - 46p
"회복될 수 없을까 봐 두렵구나"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두 손과 몸이 몹시도 싸늘했다. - 47p
어머니 곁에서 생활하던 그 자그마한 노파가 사라지고 그녀의 벽장이 텅 비어 있다. 나는 아직도 그 노파가 어디에 있는지 감히 물어볼 용기가 없다. - 67p
아직 죽기 싫다
예전에 어머니는 내게 "난 널 책임질 의무가 있어!"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내가 무엇을 하든 간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며 나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80p
어머니는 몸도 몹시 쇠약해져서 간신히 걸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내 옷에 관심을 보인다. 항상 옷감을 만지작거리면서 "좋구나"한다. 내가 입은 검정색 긴 외투를 가리키면서 "이런 외투를 또 사게 되거든 내 것도 좀 생각해주렴!"하고 말한다. - 81p
어머니는 과자 상자를 뜯기 시작했고 또다시 과자를 먹으려고 애쓴다. 어머니는 수건이며 속치마 등을 모조리 찢어놓았고 물건들을 죄다 비틀어서 구겨놓으려 했다. 완전히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 같았다. 어머니의 턱은 축 늘어져 있고 입은 항상 벌리고 있다. 나는 이렇게까지 크게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았다. - 85p
어머니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가던 그 끔찍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뭔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람처럼 자꾸만 집을 되돌아보았다. - 90p
어머니는 자신의 건강한 체력을 과시했다. 이처럼 건강했던 어머니에 비하면 나는 허약체질에 불과했다. - 96p
나는 어머니가 타고 있는 휠체어의 제동 장치를 확인하려고 몸을 구부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몸을 숙이더니 내 머리를 껴안았다. 어머니의 이 몸짓, 바로 이 사랑을 나는 한동안 망각한 채 지내왔다. 이 사랑의 몸짓을 잃고서도 어머니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 14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