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나 놓고 가는 거 아니지?

불안에 대하여

by 정 호
아빠: 얼른 챙기자 늦었어

엄마: 이제 다 했어 옷만 입으면 돼. 밖에 추우니까 OO이 모자 좀 챙겨줘

(외출을 앞두고 서로 분주하게 방문을 사이에 둔 채 이곳저곳을 들락거리며, 빠뜨린 것은 없는지, 켜 둔 것은 없는지 집안 구석구석을 확인한다)

아들: 엄마, 아빠, 나 놓고 가는 거 아니지?

엄마, 아빠:... 응?


얼마 전 백화점에서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또 다른 아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뛰어다니는 한 여성의 모습을 목격했다. 예전 같았으면 '애를 잃어버렸나 보다' 하며 금세 다른 생각으로 넘어갔을 테지만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백화점에서 아이를 잃어버려 뛰어다니며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짧은 탄식을 내뱉게 되었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무서웠을까. 그것은 아마도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두려움들 가운데 하나였을 테다. 당황하여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애처롭고 위태로워 보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잠시 동안 발걸음을 멈춘 채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저 아줌마는 왜 그러지"라는 아이의 물음에 "아이를 잃어버렸나 봐"라고 답했다. 부모가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의 인과 관계를 부모가 자식을 놓고 갔기 때문이라 생각했을까. 외출을 준비하던 우리 부부에게 아들이 갑작스레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을 놓고 가는 거 아니냐고 던지는 질문은 한순간 놀라운 정적을 만들어냈다.


무슨 소리지?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아이의 마음에 잉태된 불안은 무엇으로부터 기원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지난 주말 백화점에서 마주한 한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불안은 모든 것을 잠식하며 파괴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를 잠식하고 사랑받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은 온전한 형태의 나로 살지 못하도록 자신을 파괴한다. 삶이라는 과정 속에서 불안은 피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실체가 없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할지라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아이의 불안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백화점에서 마주한 여성의 다급함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소실될 수도 있으리라는 긴장감을 느꼈을 수도, 우연히 보게 된 영상 매체 속에서 유기의 간접 경험을 했던 것이었을 수도, 부모의 말과 행동에서 분리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던 것이었을 수도, 그 원인은 명확한 어느 한 지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희미하게 중첩된 여러 지점들의 시너지 효과였을 수도 있다.


아이의 불안의 근원이 어디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불안의 존재 자체가 거슬렸다. 불안이나 긴장을 경험하지 않도록, 경험하더라도 충분한 안전이 담보된 환경 속에서 선택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테두리를 치며 아이를 양육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는 부모가 제어할 수 없는 불안들이 싹트고 있던 모양이다.


모든 상황, 모든 환경을 제어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부모가 아이의 마음에 심어주고 싶은 씨앗과 아이의 마음속에 잉태되는 씨앗이 늘 같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저 여력이 되는 동안만큼은 아이의 주변을 맴돌며 물도 주고 가지도 쳐주며 따스한 햇빛을 함께 쬐고 싶다는 마음, 아마도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