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집에 모이잖아

가장 진실된 증인의 든든한 증언

by 정 호
아들: 아빠 지금이 저녁이야?

아빠: 그러네 이제 저녁이네

아들: 신난다

아빠: 왜?

아들: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집에 모이잖아


퇴근 후 처가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슴푸레한 하늘을 말없이 잠시 바라보더니 아이는 저녁이 되고 있는 것이냐고 물어왔다. 이미 몇 번 반복적으로 물어온 질문인 탓에 나 또한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적으로 같은 답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렇게 푸르스름한 색은 저녁이고 완전히 캄캄해지는 것이 밤이라고.


아이는 현상에 대한 이해가 끝나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곤 했다. "하늘에 떠있는 저 하얀 것이 구름이야"라는 현상이 이해된 뒤에는 "저 구름 꼭 솜사탕 같다, 아빠랑 동물원에서 먹었어"와 같은 말을 곁들이는 식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아침과 낮, 저녁과 밤이라는 시간적 흐름과 변화하는 현상에 대한 이해가 완벽히 종결되었는지 아이는 저녁이라는 현상에 자신의 감상을 녹여낸다. 그리고 그 감상은 나의 마음까지 녹여낸다.


어린 시절의 나는 저녁이 되는 것이 싫었다. 가족이 집에 모였기 때문이다. 밖에 나와 있는 것이 신나는 일이었고, 밖에 나가 있는 것이 고통을 피하는 일이었으며, 밖에 있는 것이 안정을 도모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어린 시절의 나는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늘 "행복한 가정을 일구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오늘, 아이를 통해 오래도록 품어왔던 꿈을 이뤘다.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집에 모이기 때문에 신난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너에게는 그것이 신나는 일이 되었구나. 감사하고 다행인 일이다. 나에게는 삶의 보상이자 너에게는 삶의 토대가 될 일을 우리는 오늘 함께 목격한 셈이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사건이었던 하루였단다.


단순히 어린 탓에, 하는 짓이 귀여워 아이를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간다. 아이는 내 삶의 증인이자 무엇보다 강력한 동력이 된다. 아이의 입을 통해 내가 잘 살아왔다는 것을 확인받는 순간만큼 충만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드물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은 면을 두루 살펴온 사람의 목격담이기 때문이다. 자식의 증언에 거짓이 있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자식은 가장 진실된 증인이자 동시에 가장 냉혹한 검사이며 가장 올바른 판사이기도 한 셈이다. 그토록 커다란 존재에게 받는 인정은 그래서 무거운 가치가 있다.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인정의 욕구가 가득 채워짐을 느낀다. 가장 의미 있는 타인인 가족은 그래서 늘 서로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가족으로부터 두터운 인정의 방패를 부여받은 사람은 삶을 마주함에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