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제일 친한 친구는 아빠야

고마운 말, 무거운 말.

by 정 호
아빠: 유치원에 재밌는 친구들 많아?

아들: 응

아빠: 오늘은 누구랑 재미있게 놀았어?

아들: OO이가 웃긴 춤을 춰서 재밌었어

아빠: 아들도 같이 춤췄어?

아들: 응 같이 췄어

아빠: 재밌었겠다. 아들이랑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야?

아들: 나랑 제일 친한 친구는 아빠야


무뚝뚝한 아버지를 둔 대부분의 아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자식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주고 싶었다. 오래도록 꿈꿔왔던 일이 막상 실현되는 순간에는 그것이 비현실적인 상황처럼 느껴지듯, 그렇게 바래 마지않았던 일이 아이의 입을 통해 현실화되었을 당시에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잠시 혼란이 밀려왔다.


그토록 되어주고 싶었던 친구 같은 아빠라는 타이틀을 다른 사람도 아닌 자녀에게 직접 인정받았을 때의 기쁨은 강렬했다. 그것은 생을 통틀어 기억에 남을만한 순간으로 손꼽을 만큼 몇 안 되는 결정적 순간들 가운데 하나로 각인되었다.


사람의 말 한마디에 이토록 강력한 힘이 깃들 수 있을까. 찬탄, 인정, 후회, 안도. 온갖 종류의 감정들이 아이의 한마디 말과 동시에 귀에서 가슴으로 쏟아져 내린다. 그렇게 흘러내린 감정은 폭포처럼 흐르고 부수어져 손가락 끝까지 잘게 잘게 전달된다. 두 귀에서 심장으로, 심장에서 손끝으로 전달되는 짜릿함은 금세 저릿함으로 변화한다. 나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을 아이와, 아이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을 나를 생각하니 그 공명의 무게감이 실로 체감되는 듯하여 두 어깨가 실제로 짓눌리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는 아빠라는 아이의 한마디 말은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산뜻한 기쁨과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버거운 책임을 느끼게 한다.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가장 미워지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친근한 존재가 가장 어색한 존재로 변모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와 부모의 관계 역시 그 테두리 안에 있다. 아니 모든 관계가 그렇다.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만겁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멀어지는 데에는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하다.


이 소중한 관계를, 이 소중한 마음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변치 않음을 바라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의 마음만큼은 변치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설령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부모는 어쩔 도리가 없다. 자식에 관해서라면 늘 그렇게 희망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부모인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