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여우니까 봐줘

귀여움을 무기 삼는 네 살 어린이

by 정 호
아들: 아빠 빨리 해

아빠: 알겠어 아빠 주사위 좀 줘

아들: 여기 있어

아빠: 얍, 3 나왔다. 아니 이런 덫에 걸려버렸잖아 한 번 쉬어야겠네.

아들: 으하하하 진짜 웃기다. 이제 아빠는 주사위를 던질 수가 없어.

아빠: 맞아 다음 차례에 한 번 쉬어야 해. 이번엔 아들 차례야 던져봐.

아들: 어? 2가 나왔다. 나도 덫에 걸려버렸네...

아빠: 앗 그럼 아들도 다음 차례에 주사위를 던지면 안 되겠네!

아들: 나는 귀여우니까 봐줘

아빠:...?


게임은 이겨야 재미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룰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규칙을 준수하는 일이다. 규칙을 지키면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그 희열은 극대화된다. 핸디캡이 주어진 상대를 이겨봐야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그런 것은 뒷전이라는 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승리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다. 얼마 전까지는 주사위를 던져서 벌칙이 주어지는 자리에 도달하게 되면 울며 떼를 쓰더니 이제는 미리 계산을 하는 모양인지 자신이 원하는 숫자가 나올 때까지 주사위를 계속 던진다. 그러다가 오늘은 웬일인지 미리 생각하지 않고 주사위를 던진 모양인데 한 텀을 쉬어가야 하는 자리에 걸린 뒤에 내놓는 말이 자못 뻔뻔하기도 하고 그 태연한 당당함이 우습고 귀여워 미소와 함께 한참 동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머리를 쓰다듬는다.


귀여우니 봐달라는 그 표현과 생각이 참으로 귀엽고 당돌하다. 자신을 확실하게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만 던질 수 있는 호기로운 배짱이다. 이럴 때면 규칙 준수를 통한 사회성의 함양과 충만한 애정을 통한 정서적 안정감 중 무엇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잠시 고민에 빠지게 되지만 아직까지는 사랑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고민의 시간은 아주 짧게 끝나버리고 만다.


언젠가 사랑보다 질서의 손을 들어주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모난 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원만한 인간관계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가치들을 위해서, 규범과 관습과 상식을 익히지 못해 잃게 될지도 모를 수많은 가치들을 생각하며, 내 자녀가 울타리 밖의 들짐승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갖 세상의 기준들을 들이대는 날이 언젠가 반드시 오리라.


그 순간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 하나만은 잊지 않아야겠다. 세상의 어떤 가치와 기준들을 인식하건 못하건, 습득하건 못하건, 수행하건 못하건, 여전히 제자리에서 너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따끈한 애정을 담은 시선으로 너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것을 응원하며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연결될 때, 지켜야 할 것은 자연스레 지켜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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