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 없어

그린벨트 해제는 성공할까 실패할까

by 정 호
아빠: 아들, 어린이집 친구 중에 OO 이는 같이 놀 때 어때?

아들: 웃겨

아빠: 재밌는 친구구나 그럼 OO 이는 어때?

아들: 맨날 울어, 근데 착해

아빠: 그렇구나 그 친구는 자주 우는구나 그럼 OO 이는 어때?

아들: 착해

아빠: 친구들이 다 착해? 그럼 혹시 친구들 중에 아들을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는 친구는 없어?

아들: 응! 나쁜 사람 없어


맑고 깨끗한 아이의 마음에 감동한다. 아이의 속을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상처하나 없는 사람 없겠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아이의 마음에는 기억에 남을만한 생채기는 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것이 나쁜 사람인데 나쁜 사람은 없다는 아이의 말에 절반의 안심과 절반의 걱정이 동시에 마음을 감싼다. 아직까진 특별히 걱정할만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그와 동시에 언제든 나쁜 환경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뒤죽박죽 섞인다. 한번 들은 욕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서른 번의 따듯한 말이 필요하다는 어느 연구결과는 긍정의 말보다 부정의 말이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에 근거할 때 안도와 걱정이 반씩 섞인 마음이 금세 불안의 힘에 압도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린벨트는 국가가 지정한 청정구역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함과 동시에 냄새를 맡은 투기꾼들이 몰려온다. 그들은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길을 낸다. 개발이 성공한다면 그곳은 번영을 누리게 되지만 실패한다면 유령도시가 되어버리고 만다.


아이의 세상 역시 아직은 청정하다. 부모라는 강력한 울타리가 청정함을 유지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그린벨트는 곧 해제된다. 해제의 권한은 부모에게 있지 않다. 그 권능은 오직 세월에 의해 집행된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으며 아이는 자꾸만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경험, 새로운 지식, 그에 더해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역량 역시 변화한다. 변하는 내적 외적 상황들은 더 이상 부모라는 그린벨트를 강력하게 거부한다. 그리고는 자가발전을 시작한다.


이 시기가 되면 자녀에게 부모의 영향력은 아주 미미해진다. 만약 아이의 자가발전이 부정적인 쪽으로 진행된다면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는 불안해진다. 그리고는 영향력이 줄어들어 이미 효율이 바닥인 부모와의 접촉을 여전히 고수하려 한다. 하지만 이쯤 되면 부모의 말은 거의 먹혀들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 시절이 중요하다. 아직 부모의 말이 먹혀들어가고 급격한 자가발전이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양분을 제공해야 한다. 부정적 환경에 노출되더라도 그것이 부정적인 것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자신의 행동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동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놓아야 한다.


닥쳐서 해결하려 하면 늦는다.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예방이 최선이며 준비만이 유일한 대책이다. 나쁜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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