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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기의 최전선

글에 대한 풍부한 사유

by 정 호

글쓰기에 대해 얼마나 진심이며 글과 삶을 일체 시킬 수 있는 사람이기에 "최전선"이라는 표현을 자신의 책 제목으로 고를 수 있었을까. 좋은 글은 사람이 드러나는 글이어야 한다. 좋은 책 또한 마찬가지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자신의 삶을 녹여 한 권의 책을 지어냈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곳곳에 묻어난다. 그녀가 겪은 경험과, 그간 진행해 온 수업을 통해 만난 사람들, 그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배움과 이해와 공감은 훌륭한 앙상블을 이룬다.


배움과 실천, 자족을 수행하는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그간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하나씩 풀어내는 그녀의 책 속에는 글쓰기에 대한 철학과 사유가 한껏 녹아 있다. 아이들과 글쓰기, 책 쓰기 수업을 해보려고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찾아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글쓰기의 기술을 가르치거나 책을 내는 루트를 가르쳐주는 책은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작가가 느낀 것들을 차분하게 풀어낸 책이다.


좋은 글에는 그 사람이 드러나야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용산참사, 세월호 등 사회 이슈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 페미니스트, 성폭력 피해자 같은 여성들의 삶을 같은 여성으로서 들여다보려는 노력, 한겨레에서 취재기자로 일했던 시절의 경험과 당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 작가의 사유에 본질이 되는 철학과 그 철학을 함께 공부하는 수유너머라는 공동체, 자신이 읽은 책, 다양한 문인과 철학자의 말과 삶이 그녀의 글을 통해 분출하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그려낸다.


작법서는 아니지만 글쓰기에 관한 책인 만큼 글쓰기를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만의 기준도 담겨 있다. 자명해 보이는 것에 물음을 던질 것, 자신을 분명히 드러낼 것, 다르게 생각할 것,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쓸 것, 사건이 지나간 뒤 나에게 남아있는 것을 살필 것,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글쓰기는 결국 나를 쓰는 행위라는 점이다. 그녀의 말에 의해 글쓰기는 나를 통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한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팁 또한 몇 가지 적어두었는데 이미 많이 봐온 팁이라 새로울 것 없어 보였지만 그 팁을 설명하는 방식조차 풍성한 개인적 사례들 덕분에 식상하지 않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단문 쓰기, 필사하기, 마음에 걸리는 일 찾기, 구체적으로 쓰기, 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쓰기, 교훈으로 마무리하지 말기 같은 내용들이었는데 교훈으로 마무리하지 말기가 특히 내 눈을 끌었다. 글이 삶을 크게 벗어나긴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 교사인 탓일까, 글을 쓰며 자꾸만 교훈적으로 마무리하려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글을 마무리할 때면 무의식 중에 교훈으로 달려가고 있는 스스로를 인식할 때 어쩔 수 없는 직업적 한계를 느낀다. 글은 삶을 배반하지 않으며 그것은 글 쓰는 사람에게 좌절의 지점이기도 하지만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는 은유 작가의 말을 새겨본다. 삶은 걸림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디딤돌이 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part5는 인터뷰 쓰기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분야의 글쓰기라서 관심 있게 읽혔는데 인터뷰가 갖는 의미가 상당히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 사회는 좋은 삶에 대한 기준이 편협하다. 화원에서 파는 꽃과 동물도감에 나오는 고양이의 사진은 그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딱 그만큼이다. 척도에 의해 선별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보이지도 못하게 한다. 삶도 그와 같다. 가령 학벌, 돈, 직업, 외모 등 극히 물질적인 것을 척도로 삼아 그것이 충족될 때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고 미달할 땐 무시한다. 무시는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없는 듯이 취급한다. 이 가려진 부분,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게 글 쓰는 이의 역할이다. 작가는 삶에 대한 옹호자다. 모든 생명은 그 땅의 최상이고 그 세월의 최선이었음을 기록하는 것이다. 사람끼리 속삭인다. 삶에 대한 옹호는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얼굴을 마주할 때 가능한 관계이자 부단한 접촉을 통해 우러나는 감정이므로 옹호를 연습하기 위해 나는 글쓰기 수업에 인터뷰를 넣는다.
- 글쓰기의 최전선 -


앞으로 국어 수업에는 반드시 인터뷰를 넣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삶에 대한 옹호, 타인을 바라보려는 애정 어린 시선, 인터뷰를 통해 글을 쓰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이다. 아이들이 자기 주변의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 장면 하나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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