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에 열광하는 이유

나의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스타에 대한 헌신

by 정 호

콘서트장에 찾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정을 줄줄 읊을 정도는 아니어도 어린 시절 우리는 한 번쯤 아이돌에 빠져본 경험이 있다. 아니 요즘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내 새끼"들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자는 마음가짐으로 무장한 30대 이상의 팬층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아이돌에 열광하는 현상을 단지 어린 시절의 철없음으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설명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이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화려한 겉모습이다. 여자 아이돌은 물론이거니와 남자 아이돌이 진한 화장을 하고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 등 일반 남성들이 활용하기엔 부담스러운 아이템들을 소화해내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세계에서 당연시되는 행위이며 아이돌이 갖추어야 할 요건 가운데 미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이돌로써 응당 수반해야 하는 의무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것은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세월의 모진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직장 동료나 염치를 잃어버리고 아줌마 아저씨로 전락해버린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하루하루를 부대끼며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아이돌은 나름의 청량함과 잃어버린 상쾌함을 선사해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멋진 외모와 화려한 노래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팬덤을 형성하여 독보적인 영향력을 획득하는 슈퍼 스타로 발돋움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외모가 아이돌의 필수 요소라고 한다면 무수한 아이돌 사이에서 두 발자국 정도 앞선 곳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뿜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조건은 "자신의 색깔"이 얼마나 확실한가, 그것을 지지해주는 팬들과 얼마나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쌍방향적인 신뢰"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가에서 판가름 난다.


색깔과 소통 그리고 신뢰 가운데 가장 기본은 색깔이다. 소통과 신뢰를 쌓으려면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아이돌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색깔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메시지를 통해 드러난다. 아이돌의 노래 가사와 그들이 찍는 광고, 그들이 걸어가는 발자취 하나하나가 바로 그들의 메시지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과 내가 추구하는 것이 일치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다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아이돌의 노래 가사가 유독 사회 비판적이고 힐링과 자기 확신 등으로 가득 차있는 이유는 그들을 따르는 10대의 고민거리와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30대 이상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세월이 지나 나이는 먹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10대의 고민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이별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찾아 듣게 되고,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사회 문제를 다룬 노래를 찾아 듣게 된다. 같은 이유로 일상의 잔잔함에 빠져들고 싶은 사람은 일상을 그리는 노래를 찾아 듣곤 한다.


노래를 찾아 흥얼거리다 보면 특정한 뮤지션에게 흠뻑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다거나, 전혀 관계가 없는 가수들의 노래를 주욱 듣다가 알고 봤더니 같은 작곡가 혹은 같은 작사가의 노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다. 이것은 노래에 빠지는 것이라기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작자에게 매료되는 것이다.


아이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에는 스타 가수들이 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때로 인생의 무거움을 이야기하며 지친 우리네 아버지의 등을 도닥거려 주었을 것이고, 엄마로 살아가며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여성들을 위로해주기도 했을 것이다. 우정이나 사랑, 만남과 이별, 그리움과 서글픔 등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무수한 감정들을 살펴보고 보듬어주며 특별히 많은 사랑을 받은 각 시대의 아이돌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아이돌로 시작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가수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감독이나 글을 쓰는 작가, 스타 강사 등,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내가 공감할만한 말을 창안해내는 사람들은 분야마다 넘쳐난다. 요즘 말로 크리에이터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팬덤을 구축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유명한 사람과 식사 자리라도 한 번 하고 나면 나도 마치 잘 나가는 사람이 된 듯이 느껴지는 것처럼, 유명인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같다는 데에서 오는 우쭐 감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도 같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항상 수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다니는 슈퍼 팔로워들은 존재했다.

때때로 아이돌, 혹은 이런 파워 인플루언서들을 따르는 팬덤 문화를 지켜보고 있으면 종교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이돌의 생일을 챙기고(탄신일) 아이돌이 나타나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고, 아이돌들이 지나쳤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본다거나(성지순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만이 최고의 아이돌이며(유일신) 다른 아이돌들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단)인 것이다. 아이돌의 세계는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고 너그럽게 서로의 세계를 존중해주는 배려심 넘치는 세상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미루어 짐작해본 결과 사람은 항상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을 직접 드러내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길 꺼려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내는 유명인이나 기업, 단체, 스포츠 팀을 지지하고 열렬한 응원을 보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런 짐작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취향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드러내기 조심스러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의 생각을 세상에 대신 전파해 줄 나의 대리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아이돌에 열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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