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개그맨 유세윤의 말이다.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어린 시절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게 되고,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불현듯 머릿속에 스치면서 내 과거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상태를 "완전"에 가까워지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완전이라는 것은 미완인 부분 없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형태를 뜻한다. 유세윤의 말처럼 아이를 통해 부모는 자신의 삶이 완전해짐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과거의 내 행동과 생각을 되돌아보며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알아챌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저 아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우는 것인지, 저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저 아이에게 지금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갈망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하기 싫어하는지. 부모는 아이를 바라보며 동시에 자신을 본다.
그 외의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받지 못했던 사랑과 지지를 아이에게 전해줌으로써 미완으로 남아있던 나의 과거를 완결 짓고 싶어 하는 심리상태다. 이는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나를 쏙 빼닮은 아이가 곧 나의 분신인 것 같고 그런 아이에게 잘해주는 것이 마치 나를 돌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조금 더 사랑을 받고 자랐더라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텐데, 이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아이에게 자신이 부족하게 느꼈던 환경과 반대되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행동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
이런 생각들을 인식하며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고 인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 중에 행동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아이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풍요의 상징 또는 사랑의 결과와 같이 행복에 다다를 수 있는 하나의 조건과 연결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무엇이 되었건 사실 관계없다. 그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데 그칠 뿐이지 이런 몇 가지 사례로 아이의 존재를 규명하기에 아이의 존재감은 더없이 광대하다. 그저 그 거대한 존재의 존재 이유를 상상해 보고 설명해 낼 수 있는 작업을 여러 사람이 반복적으로 해보았으면, 그리고 여러 루트를 통해서 말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역시 아이를 잘 길러내고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테니까.
요즘 여러 매체를 통해 아이가 마치 악의 화신인 것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해 또 새로운 혐오의 정서가 확장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혐오하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보이는 혐오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혐오의 목표물이 아이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혐오의 정서를 뿌려대는 사람만큼 사랑의 정서를 흩날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